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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19: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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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건군사(建軍史)의 교훈 (국방일보)



제목 : 건군사(建軍史)의 교훈

저자 : 국방사부 선임연구원 백기인

수록 : 국방일보, 2002.10.07


일찍이 민족사학자인 백암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의 서언에서 형(形)인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정신(神)인 역사는 존재한다고 하였다. 역사는 살아있는 정신 곧 역사의식에 의해 단절을 극복하고 계속된다는 말일 것이다. 서양의 역사학자 코맹거(H. S. Commanger) 또한 역사란 그 주체의 능동적인 역사의식에 의해 새롭게 재생(recreate)된다고 했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광복 직후 민족의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국방·군사 건설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의미와 상통한다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국군이 조선국방경비대(朝鮮國防警備隊)로부터 출발하여 자주독립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당당한 국가안보의 보루로서 발돋움 하기까지는 다시는 국권상실과 같은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정신적 각성 외에는 물적 토대없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불굴의 창업과정이었다. 우선 미국과 군정 당국에 제한을 받았는가 하면, 물적 기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로서는 그들을 설득하고 지원을 끌어내야 하는 지난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1945년 11월 13일 쉬크(L. E. Schick)를 책임자로 한 국방사령부의 발족과 뱀부계획(Bamboo Plan)에 의한 조선경비대의 창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방군으로의 전환과정이 그랬다.

그러한 끈질긴 설득과 인고 끝에 애초 군사력 건설에 회의적이던 미측의 입장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어 경찰예비대에 불과했던 군을 전문군사조직으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1949년 6월에 단행된 미군 철수를 계기로 5만명 수준의 한국군 지원계획을 끌어냈는가 하면, 군사고문단(KMAG)의 설치와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을 통해 군사원조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건군의 공로자인 이응준(李應俊) 장군은『회고 90년』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건군의 초석이 되고자 미력이 나마 보탰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러나 건군 초기의 시련과 고통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국군은 온갖 악조건과 싸우며 건군에 임했지만, 충분한 전력을 갖추지 못한 채 역사상 미증유의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다. 북한의 남침을 맞은 신생 국군은 온몸을 던져 육탄으로 조국강토를 지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전쟁은 전 국민은 말할 것 없고 국군에게도 참으로 고통스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시련과 고통은 한편으로 우리 군을 보다 강력한 군대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건군사를 통해 국군이 국가적인 위기 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6·25전쟁 당시 신생 국군은 총력전(總力戰)의 핵심주체로서 민·관과 더불어 국가와 민족의 보전을 위해 국난극복의 선두에서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혼란의 와중에서도 대미협상력을 강화하여 상호방위조약(相互防衛條約)을 체결하는가 하면 전후 안정된 국방에 필요한 국군증강에 관해 양국간에 최선의 합의를 도출해낸 사실은 주목된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 당시 8개 사단 23개 연대 규모의 국군은 1954년 전후로 20개 사단 40만명으로 다시 1958년경에 이르러서는 60만명 수준으로 전력을 크게 향상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국민적인 강력한 지원 하에서 국군이 전쟁수행은 물론, 전후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당시의 역사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교훈의 하나이다. 또한 건군사는 튼튼한 국방을 위해서는 국력의 신장과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미래지향적인 중·장기 국방정책과 계획의 수립을 통해 지속적인 전력증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제주 4·3사건을 비롯하여 여순 10·19사건이나 대구 6연대사건 등 이념적 혼란으로 인해 엄청난 소모가 있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군의 이념적 통합이 군의 단결과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가를 알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념이나 사상은 부대단결의 핵심요소이다. 건군기 우리 군이 ''자주독립(自主獨立)과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광복군 정신을 구심점으로 일치단결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전환기 군 정신전력의 한 요소로서 역사의식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지금 우리 군은 민족사적 전환기에 건군사에 뿌리를 둔 역사의식을 통해 조국수호의 방패로서의 시대적 소명을 재확인할 때이다. 바야흐로 21세기의 첨단지식정보군으로 받돋움하고 있는 장도에서, 건군 과정에 관류되었던 건군 주역들의 역사의식과 불굴의 정신을 되돌아 보면서 오늘 우리 군에 부여되어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민족 숙원의 견인차로서의 역사적 책무를 다할 각오를 재삼 다짐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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