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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19: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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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특별기고-잊어서는 안될 주한미군 역사 (국방일보)



제목 : 특별기고-잊어서는 안될 주한미군 역사

저자 : 군사편찬연구소장 하재평

수록 : 국방일보, 2003.01.28


한반도 전쟁억제 중심역할 수행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근간(根幹)이며 6·25전쟁의 주역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25전쟁에서 부상한 미군은 9만2000여 명이다. 그 중 많은 인원이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병원에서 아픔을 달래고 있다.

중공군의 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청천강 전투에서 미 2사단은 군우리 철수 중 3000여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참극(慘劇)을 당했다. 또한 미 해병1사단은 영하 30도의 장진호 전투에서 700여 명을 잃고 3000여 명이 동상에 걸린 상태에서도 중공군 12만 명의 공격을 지연시킴으로써 군인 10만 명·민간인 10만 명의 흥남부두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연인원 180만 명이라는 인원이 이와 같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렀고, 그 이후에도 전쟁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국 군대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억제·한국근무 선호도

1945년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근무를 위해 다녀간 미군은 750여만 명에 이른다. 그 중 14만여 명이 희생했으며 우리는 그 대가로 오늘날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한반도에 중요한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항공모함 등 주요 전력을 전개하고, 공중감시 활동을 강화해 왔다. 특히 94년 핵 위기 때에는 미 본토에서 많은 장교가 증원돼 24시간 비상체제를 유지하며 군사적 위기 관리능력을 제고해 왔다.

또한 미국은 유사시 전 미 해군의 40%·미 공군의 50%·미 해병대의 70% 이상의 대규모 증원 전력을 전개토록 계획하고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안보현실이다. 그래서 지난 50년 동안 한반도에서 한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미국은 해외파견 병력 중 독일에 6만9000명, 일본 4만명, 한국에 세 번째로 많은 3만70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더욱이 6·25전쟁을 통해 가장 돈독한 한·미 혈맹관계가 형성되었음에도 한국은 지금 미군의 근무 선호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한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공공연한 미국 내 비판적 여론이 마치 항공기가 기류 변화로 탑승객의 불안을 조성하듯, 한국 안보에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미군은 한국 근무가 적(敵)이 있는 지역으로 임무가 명확하고,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심에서 정보화한 생활이 가능하며, 항상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접할 수 있어 근무선호도 면에서 미군 장교들로부터 줄곧 상위권을 차지했다. 미군의 근무지역인 오산·평택 그리고 동두천은 1년 단위 전투경험을 쌓을 수 있는 지휘관들의 선택적 보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근무가 미군의 우수인력 기피현상으로 미군의 질적 저하가 초래된다면 이 또한 SOFA 위반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여하한 경우에도 한국근무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각종 대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군철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

주한미군 수는 45년 9월8일 한국에 진주한 이래 6·25전쟁 때 최고 30만 명에 이르렀고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철수했다.

첫 번째는 49년 6월29일 미 24군단 3개 사단, 1개 전투단을 완전 철수하고 미 군사고문단 495명만 잔류시켜 북한의 기습남침을 초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54~65년 사이의 2차 철수는 2개 사단 규모만 남긴 채 6·25전쟁에 참전한 6개 사단이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3차는 69~71년까지 미 7사단이, 4차는 77년 미 2사단 일부병력이 철수함으로써 3만9000여 명으로 줄었다. 이어 92년에는 5차로 미 지상군 및 공군부대 일부가 철수함으로써 3만7000여 명이 주둔해 현재까지 전쟁억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49년 일방적 완전철수 정책을 교훈 삼아 최초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근간으로 미 증원 전력의 신속한 한반도전개 보장, 각종 연합연습, 연합사 창설, 연례안보회의 개최 등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특히 77년 미국의 무리한 철군계획 추진에 대해 주한미군 지휘관들이 오히려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 내 여론을 주도함으로써 한·미 안보의 균형자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의 진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시 반드시 선행했던 역사적 사실은 한반도 증원전력 전개 연습 및 연합연습이다. 54년 유엔군사령관 주관 하에 실시된 포커스 렌즈연습을 시작으로 61년 독수리훈련, 69년도에는 미 본토에서 한국까지 31시간 동안 비행하는 포커스 레티나 훈련과 프리덤 볼트 등 연합 공수(空輸) 전개 훈련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팀스피리트 연습과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으로 발전했고, 94년부터는 새롭게 연합전시증원연습을 실시함으로써 실질적인 전쟁 억제 능력을 극대화했다. 특히 78년 창설된 한미연합사는 연합연습 등을 통해 한국군 부대의 전쟁 억제 능력 제고에 크게 기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한미군 관계개선위한 제언

주한미군 문제는 양국이 가장 신중히 다루어야 할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다. 역대 미군 지휘관들은 한·미 동맹의 근간이 군사적 문제로부터 출발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전쟁 억제 수단인 군사적 의미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던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주한미군과의 새로운 관계 개선, 새로운 시각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다. 이러한 차원에서 몇 가지 현실적인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주한미군과 자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야 한다. 최근 미군의 `뉴 호라이즌 데이''''(New Horizon Day)와 같은 행사에 한국이 지원하는 문화교육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둘째, 북한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위협에 대한 한·미 간의 시각 차를 극복해야 한다. 비록 이러한 시각이 소수의 견해일지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셋째, 77년 철수 사례와 같이 주한미군 장성들이 한국의 입장에 서서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적극적인 한·미 군사외교가 지속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넷째, 한반도 주요 군사작전은 한·미 간에 충분히 협조된 연합사 기능이 강화돼야 하며, 미군에 의한 일방적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주한미군의 역사는 전쟁 억제의 군사적 역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필수적 기반 요소로서 경제적 번영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미래지향적인 동반자적 한·미 동맹관계는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역설적(力說的)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하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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