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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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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건군정신과 국군의 이념 (국방일보)



제목 : 건군정신과 국군의 이념

저자 : 국방사부 선임연구원 백기인

수록 : 국방일보, 2003.02.22


전통적으로 집안에 족보를 두어 가계사를 전하고, 왕조에서 종묘사직의 세보(世譜)를 보존하던 일은 역사의식의 소산이었다. 현대사의 국군창설사는 실상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는 역사적 전기였다. 그 역정을 기록한 역사인 ''건군사(建軍史)''는 한국군 제1의 족보요 세보나 다름없다. 역사가 기원과 변화를 고구하는 장(場)이라면 건군의 역사는 오늘 우리 국군의 뿌리요 원형이다.
건물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이 초창기 군에 대한 확고한 역사인식은 오늘 국군의 정신적 기반인 것이다.

국군의 창설은 민족의 자주적 방위력을 확보하기 위한 주체적인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광복 이후 현대 한국사의 한 중심에 있었다. 그것은 의병(義兵), 독립군(獨立軍), 광복군(光復軍)을 이어 역대 국군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민족자존의 길과 통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나 군의 지도자들은 나라잃은 설움을 털고 와신상담의 각오 아래 불굴의 인내로써 민족수호의 파수군인 정병을 양성하기 위한 이른바 건군운동(建軍運動)에 나섰다.

건군의 주역들은 미국 당국과 군정청을 설득하여 애초의 통치정책을 변경시켜 1945년 11월 13일 오늘날 국방부의 전신인 국방사령부(ODND)를 발족하게 하였다. 국방기구의 설치는 건군의 열기를 한 데 모아 장차 정규군이 될 조선경비대의 창설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해군의 전신인 해안경비대 또한 출범하게 되었다. 이렇듯 경비대에서 출발한 국군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성장하여 국가보루의 초석이 되었다. 1년 뒤인 1949년 4월 15일에는 해병대가 창설되었고, 그해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공군이 독립하여 그 면모를 새롭게 함으로써 명실공히 현대 국군의 군 구조가 갖추어졌다.

이러한 건군 과정에는 민족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하여 독립국가의 견실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건군 주체들의 확고한 역사의식이 작용하였다. 광복군은 귀국 시 그 정통을 국군에게 계승하기까지 결코 해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광복군복원선언(光復軍復員宣言)''을 하면서 재결집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군정하에서 국방의 수장인 통위부장의 선임에 있어서도 광복군의 존재는 비중있게 고려되어 광복군계의 유동열, 이청천, 이범석 장군이 물망에 올라 최종적으로 유동열이 추대되었다. 광복군이 건군의 기간이 되어야 한다는 민족적 여론이나 기대를 반영한 조처로 미 군정 나름대로 건군의 중심에 광복군을 두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광복군 출신의 통위부장 취임을 계기로 조선경비대의 사령관 또한 광복군 출신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광복군의 경비대 참여가 가속화되었고, 정부수립 후 초대 국방부장관의 취임을 통해 국군의 정통성을 광복군과 그 정신에 연원을 두는 상징적 형태로 나타났다. 국군장병들에게 광복군의 후예라는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의 교장에도 광복군 출신을 보임시켰다. 역사상 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을 통해 국군의 맥을 계승해 온 광복군을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로 삼아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실로 광복군이 국군에 물려준 것은 단지 유형적인 것이 아니라 국군 정신의 요체인 무형적 자산이었던 것이다.

건군정신은 정부수립 직후「국방부훈령 제1호」로 재천명되었고, 국군3대선서와 사병훈, 그리고 군인복무령을 통해 ''국군의 이념''으로 승화되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국제평화주의를 시대적 좌표로 하여 면면히 이어져 온 민족사적 국군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한편, 의병·독립군·광복군의 자주독립정신과 이념대립의 현실인식에 따른 반공정신을 토대로 하는 군의 사상적 지표였다. 건군정신은 국가의 창업정신을 담은 건국이념과 맥을 같이 하면서 한민족에게 독립된 민족국가의 전망을 제시해주었다.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초대 국방부장관은「국방부훈령 제1호」에서 ''자주독립과 진충보국''의 건군목표와 정신을 상기하면서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정성단결(精誠團結)로 전 국민의 애호를 받고 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국군의 사명을 강조하였다. 당시 국방부장관의 지도지침은 다름아닌 민족 고래의 상무정신과 애국사상에 접목되는 국군의 정신을 밝힌 것으로,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국군3대선서(國軍三大宣誓), 그 이듬해에 반포된 국군맹서(國軍盟誓)로 다듬어지면서 국군 전 장병의 정신과 행동강령이 되었다. 제반 강령을 통해 형성된 국군의 이념은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애국사상, 반공정신을 바탕으로 정립된 군의 역사성·사상성·군인정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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