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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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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월한국군의 철수와 국군의 발전 (국방일보)



제목 : 주월한국군의 철수와 국군의 발전

저자 : 국방사부 연구원 이미숙

수록 : 국방일보, 2002.05.30


c 월남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계속해서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하려는 프랑스와 이에 저항하는 월남인의 전쟁이 1960년대 미국의 개입으로 ''월남전의 미국화''가 추진되면서 월맹과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월남전의 확전으로 국제적 냉전은 심화되고 미국의 봉쇄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가운데 주한미군의 월남전용문제가 제기되자, 당시 국방비의 60%이상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우리의 안보는 위협받게 되었다.
c정부는 이러한 위기의 극복차원에서 "한국전쟁시 참전한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과 "월남전선은 한국전선과 직결되어 있다"는 판단하에 미국 및 월남정부의 요청과 국회동의를 거쳐 1964년에 국군을 파병하였다. 국군의 파병은 1964년 9월 비전투부대인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교관단을 필두로, 1965년 3월 한국군사원조단 파병, 그리고 추가적인 전투부대 지원요청에 따른 1965년 10월 수도사단(-1), 제2해병여단, 1966년 수도사단 제26연대와 보병 제9사단의 파병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8년 동안 4차례에 걸쳐 총 32만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였다.
c그러나 1960년대 후반 미국내의 반전운동이 격화되자,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월남전의 월남화''를 추진하였다.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로 1968년 6월 54만 5천여 명이던 주월미군은 1970년 43만 4천명으로, 1972년 5월 6만 9천명으로 줄었고, 1972년 12월 1일이후에는 전투부대 요원을 제외한 군수지원 및 철군 정리요원 2만 7천명만 남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닉슨독트린''을 한국에도 적용하여 1970년 7월 주한미군 1개사단의 철수를 통보하였다. 이로써 주월한국군의 철수문제가 제기되었다.
c박대통령은 1971년 1월 11일 연두기자회견을 통하여 "주월한국군의 단계적 감축을 검토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월남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 충분히 합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철군문제를 공식화하였다. 이후 정부는 월남 및 미국과의 협의하에 1971년 12월 4일부터 1972년 4월 13일간에 걸쳐 제2해병여단과 제100군수사령부 일부병력 등 총 1만여 명을 제1단계로 철수시켰다.
주월한국군의 제2단계 철수 역시 이미 제1단계 철수와 더불어 검토되고 있었다. 그러나 제2단계 철수에 대한 정부와 미·월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주월한국군사령부의 철수방침 수정 건의와 1972년 1월 10일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의 월남방문 결과보고를 토대로 하여, "1972년말까지 한국군을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피력했지만, 미국은 1972년말까지 잔류해 줄 것을 요청했는가 하면 월남은 1973년말까지 계속 주둔해달라고 요청하였다.

c이에 따라 국방부는 심흥선 합참의장(1972.1.28), 유재흥 국방부장관(1972.2. 10) 등 군 수뇌부의 월남방문을 통해 월남의 군사정세를 면밀히 살피고, 국내외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을 고려한 결과 주월한국군의 안전문제가 보장된다면 1972년말까지 잔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1972년말까지 잔류하고 1973년 전반기에 조속히 철수시킨다"는 국방부 제안을 최종방침으로 확정하였다.
c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국방부 훈령 72-140호(1972.7.26)를 지시하여 제2단계 철수(개선문계획)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c그러던 중, 미국과 월맹간의 휴전성립이 임박해지자, 국방부는 12월 13일 철군형태와 관련하여 "정상철군을 중지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주월한국군은 정상적인 철수계획으로 작성해 놓은 개선문계획을 보류하고, 휴전에 의한 철수계획인 판문점계획에 따라 긴급철군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973년 1월 30일 선발대의 귀국으로 시작된 제2단계 철수는 2월 3일부터 3월 23일간 수도사단, 제9사단 등 총 3만 8천여 명이 복귀함으로써 완료되었다.

c한편 주월군의 보유장비는 한·미 합의각서에 따라 미·월측에 반납하거나 월남군에게 이양하였다. 그러나 그외의 장비와 물자는 미·월과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최대한 휴대하였다. 주월한국군이 제2단계 철수시 실제로 휴대한 재산현황은 주요장비 1,812만달러, 탄약 140만달러, 비주요장비 235만달러 등 총 3,067만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장비와 물자는 한국군현대화와 전력증강에 직결되었다.
c주월한국군의 철수는 우리 정부로서는 당시 안보상 중대한 결정이었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거론되는 안보현실에서, 우리 군은 즉각적인 철수보다는 ''한·미 동맹관계 강화를 통한 자주국방태세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미국 및 월남과 주월한국군의 안전보장문제와 철수시기, 장비소유권문제 등을 끈질기고도 강력하게 협상한 결과 주한미군의 추가 철수를 막고 한국군현대화계획의 보장을 확보함으로써 자체방위능력을 갖추어 나갔다. 이로써 한국군은 무기 현대화와 군사력 분야에 있어서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고 정치·경제·사회분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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