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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08: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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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29>
<29>이라크 전쟁과 서희·제마부대
[“열사의 나라에서 희망의 새싹 틔우다” / 2011.07.26]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자유작전 개전 다음 날 우리 정부는 서희·제마부대 파견안을 의결했다. 이는 국제평화와 질서유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이자 한미동맹의 굳건한 상징이었다. 이미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작전에 다국적군으로서, 동티모르 치안유지를 위한 평화유지군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서희·제마부대는 아라비아 반도의 거친 모래폭풍과 열사(熱砂)의 폭염을 뚫고 나아갔다. 이라크는 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를 잇는 허브(Hub)적 위치에 있다. 서희·제마부대의 파견은 한국군의 국제평화활동 범주가 태평양과 인도양을 넘어 아시아·아프리카 대륙과 중동을 아우르게 됐음을 의미했다.

주둔지 인근의 알카바 마을에서 오폐수 제거활동을 하는 서희부대 사진
파견 당시 이라크 남부지역 작전 환경 사진

이라크 남부 디카르 주 나시리야 지역은 남부와 북부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미 1해병원정기동군과 이라크군이 치열한 전투를 실시해 교량·건물 등 많은 곳이 파괴돼 복구 소요가 많았다. 그리고 전쟁 이전에도 후세인의 집권 이후 이란과의 전쟁,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한 걸프전, 쿠르드족 탄압으로 인한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로 빈곤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곳의 인구 50만 명 대부분은 시아파 주민들로 수니파였던 후세인 정권의 극심한 차별로 인해 사회기반 인프라가 매우 열악했다. 전기는 하루에 1시간만 공급됐고 유프라테스 강은 정비가 되지 않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형은 낮은 사막지대로 평균 기온 47도, 최고 기온 57도에 이르렀다. 걸프전과 이라크 자유작전에서 발생된 불발탄과 유기탄이 도처에 흩어져 있어 동맹군과 현지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걸프전 당시 의료지원단 파견 여건과는 달랐다. 적대 세력이 잔존하는 지역 내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사전 이해도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군은 이미 아프간과 동티모르 등에서 닦은 역량을 바탕으로 이라크에서 의 임무수행에 많은 장애 요인들을 자신감과 열정으로 극복했다.

  `평화의 개척자' 서희부대

서희부대는 2003년 4월 15일, 1117야전공병단 예하 183대대를 모체로 1100건설공병단으로 창설됐다. 명칭은 고려 993년 거란과의 국경 분쟁 시 탁월한 군사외교 능력을 발휘한 서희 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이는 당시 북한의 핵 개발 재개 선언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파견 결정 시 국민의 여론 대립 등 국내외의 복잡했던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서희부대 파견 1개월 전 아프간 항구적 자유작전에 동의부대의 뒤를 이어 다산부대가 전개했다. 1제대 236명은 4월 30일 쿠웨이트 북쪽 캠프 코만도에서 현지 기후적응과 임무수행 준비를 마친 후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20km 떨어진 탈릴 미 공군 기지 내로 이동해 2제대 329명과 합류함으로써 부대전개를 완료했다. 전개 직후에는 미 1해병원정군 예속부대인 TF-E(Task Force-Endurance)의 작전통제를 받다가 미 5군단을 지원하는 265공병단 작전 통제하에서 안정화 작전을 실시했다.

파견 기간 중 2개 진(956명)은 이라크 재건을 위한 토목·건축공사로 학교보수 6건과 급수 및 오?폐수 처리 등 총 25건을 실시했다. 그리고 동맹군 기지건설 지원으로 미군과 루마니아군, 이탈리아군에 대해 연인원 3053명과 장비 802대를 투입해 진입로 보수, 골재운반 지원 등 34건을 지원했다. 미군·이탈리아군들과 연합으로 불발탄 제거작전도 함께했다. 아울러 나시리야와 디카르 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사랑의 기술학교’를 개교해 굴삭기 조작과 전기 용접 등을 교육했다. 이러한 활동은 자이툰부대 기술교육대의 전신이 돼 이라크 재건을 위한 희망의 새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방의 천사' 제마부대

제마<사람의 체질과 성격에 따라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선 말기 한의학자 이제마(1838~1900) 선생의 이름에서 따옴>부대는 320의료지원단으로 창설돼 서희부대와 함께 파견됐다. 의료지원단 파견은 1991년 걸프전 파견에 이어 두 번째로 서부사하라?아프간과 함께 이라크에 파견됨으로써 3개 지역에서 동시에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파견 기간 중 2개 진(185명)은 미군 등 동맹군 치료 외에 이라크 난민, 나시리야 외곽의 쉬크알리?아스리아 순회 진료 등 1만5000여 명에 대한 의료 지원을 실시했다. 7월에는 제마병원을 개원해 8개 진료과를 운영했다.

그리고 주이라크 한국 대사관 안전을 위해 12월 29일부터 특전사로 편성된 경비중대 병력 10명이 경계작전을 수행했다. 경비중대에는 해외파견 최초로 전투병과 여군으로 송정복 상사 등 2명이 포함돼 화제가 됐다.

서희·제마부대 파견 당시인 2003년은 한국군이 베트남전 이후 가장 많은 8개 국가에 부대단위 파견을 실시 중이었다. 임무를 수행했던 나시리야 지역은 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역군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 곳이었다. 당시 산업역군들이 생존과 성장의 몸부림에 집중했던 일꾼이었다면, 서희?제마부대는 세계 속의 국군으로 당당하게 재건지원과 평화정착을 위해 일했던 선구자였다.

나시리야에서 8월까지 임무 수행 후 아르빌 지역으로 이동해 자이툰사단 공병대대와 자이툰병원으로서 재건지원과 평화정착의 열정을 이어갔다. 이들의 헌신적인 임무수행은 태평양 동티모르부터 아프간을 거쳐 인도양을 지나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아프리카 북부 서부사하라에 이르기까지 꺼지지 않는 평화의 불빛을 비췄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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