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군사편찬연구소장 하재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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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950년 6월 25일 직전 3개월은 김일성의 숨가쁜 군사외교 협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3월 30일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3단계 남침공격계획 작성 제의를 하였고, 5월 15일에는 선제공격계획이 완료되자 모택동이 이를 찬성하였으며, 미군의 참전에 대비하여 중국도 병력을 파견하여 돕겠다는 약속까지 얻어냄으로써 힘을 받은 김일성은 소련의 무기가 도착되어 전투준비가 완료되는 6월 25일을 남침공격 개시일로 결정하였다. c이처럼 한국전쟁은 소련이 치밀하게 남침 전쟁계획을 발전시켜 북한군이 잘 훈련된 부대로 편성하고 제병협동작전 능력과 현대전 수행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전 준비된 전쟁이었다. 51년전 그날 이 땅위에서는 한민족 5천년 역사이래 가장 많은 국가인 25개국 약 150만명(1951년 12월 기준)의 군인이 ''국제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950여회라는 외침을 받았지만,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 동안 전개된 한국전쟁에서처럼 방방곳곳을 전장터로 삼아 이처럼 많은 인원이 크고 작은 전투를 치룬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는 우리 민족사를 뛰어넘어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전쟁이었고, 그 기원과 성격 또한 규정하기가 어려워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내전, 음모론, 함정설, 남침유도설, 북침설, 국제적 내전, 수정주의, 전통주의, 그리고 최근의 ''고개숙인 수정주의''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원인과 성격을 놓고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제각기 이론과 학설을 내세우며 최근까지 논쟁을 벌였던 것이 바로 한국전쟁인 것이다. c미국의 1개주보다 작은 한반도에 25개국에서 파병된 국가들이 치뤘던 전쟁은 그 참전국의 규모면에서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국제적 내전이었고, 피해면에서도 한국군 62만명, 유엔군 16만명, 북한군 93만명, 중공군 100만명, 민간인 피해 250만명, 이재민 370만명, 전쟁미망인 30만명, 전쟁고아 10만명, 이산가족 1,000만명은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명을 고려할 때, 그 절반을 훨씬 넘는 약 1,800여만명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이 전쟁의 참혹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내전이라는 측면에서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도 5년 동안 희생자는 인구 3%에 해당하는 100여만명이었고, 2차 대전시 최대의 피해를 입었던 유럽도 인구의 10%인 3,000만명의 인명손실을 입었을 뿐이다. c또한 한국전쟁은 ''밀물과 썰물'',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싸우는 전선과 휴전천막'', ''38도선에서 휴전선까지'' 그리고 ''잊혀진 전쟁'' 의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낙동강과 압록강을 오가면서 빼앗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중에 한편에서는 정전회담을 하는 등 상반된 전투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전쟁이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38도선에서 시작된 전쟁은 38도선상에 연하는 휴전선에서 50년이라는 분단의 아픔을 남겨 놓은 채 역사의 동면상태로 들어갔고,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오늘날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후 세대들은 ''잊혀진 전쟁''을 넘어 아예 ''관심없는 전쟁''으로 행동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는 세대간의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우리 기성세대들이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전쟁의 뼈아픈 교훈으로 남겨 주고 싶은 메세지는, "전쟁에서 희생의 대가로 승리하는 것 보다, 어리석은 전쟁을 다시는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소년지원병도 노무자도 전선으로 c51년전 한국전쟁은 정규군만으로는
전쟁을 치룰 수 없는 치열한 전쟁이었고, 또 戰場(전장)도 전후방이 없이 독일의 루덴도르프가 말한 전형적인 총력전
형태의 전쟁양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북한군은 소위 현대전을 치룰 수 있는 능력과 수준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중국내전에서
단련된 ''조선의용군''의 북한군 편입과 소련의 전쟁지도와 함께 최신장비로 무장하여 초기 준비없는 한국군과 북한군을 우습게
여긴 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하였고, 이는 결국 2차대전 초기의 유럽전선에서의 덩케르크를 연상케 하듯, 한국군과
유엔군을 낙동강 방어선으로 단기간에 밀어부쳤던 것이다. 민족저항정신이 국민총화정신으로 c한국전쟁중 가장 어려운 시기인
낙동강 방어 및 1.4후퇴시에 대부분 참가했던 여러 참전 단체들은 프랑스가 영국간의 백년전쟁중 어린 소녀 잔다르크가
행한 애국적 희생정신이 프랑스를 구하는 계기가 되었듯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역사적 저항정신과 상무정신으로
무장한 국민총화정신이 최후의 보루로서 민족적 생존을 지켰기에 반만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회생(回生)시킨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