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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9: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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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23>
<23>국군의 해외파견 패러다임 전환-⑴
[동북아 지역군에서 국제군으로 부상 / 2011.06.14]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은 1945년 이후 세계를 동서로 분할하던 냉전(戰) 질서가 무너지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신세계 질서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곧 이념이 아닌 종교·자원·인종 등 다양한 요인의 갈등이 표출돼 지구촌 곳곳에서 내전 또는 국제 간 분쟁이 급증했다. 이러한 상황하에 한반도에서 자주국방 역량을 비축하고 있던 한국군은 161번째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 후 세계에 그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두 번째 전투부대 파병인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환송식. 조성태(앞줄 왼쪽 다섯째)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장병들과 관계자들이 임무 완수를 다짐하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건군 제50주년 기념행사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K-1 전차 모습
한국군은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파견돼 ‘평화와 희망의 파랑새’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베트남전과 걸프전이 한미 군사동맹의 축(軸)으로서 파견이었다면 1993년 소말리아 파견부터는 유엔 주도의 안보협력체인 국제평화유지군, 즉 ‘블루헬멧(blue helmets)’으로서 의미를 지녔다.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의 근간은 참혹했던 6·25전쟁의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가슴속에서 우러난 존중과 배려였다.

그리고 진심 어린 따뜻한 손길과 눈길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는 곳마다 ‘코리아 넘버원’으로 인정받았다. 한국군에 의해 고대 실크로드는 아프간에서 레바논을 거쳐 아프리카 대륙까지 피스로드로 다시 닦여지고 있다.

▶냉전 이후 유엔 평화유지활동 변화 모색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패러다임 변화와도 직결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의 패권 하에서 국제분쟁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증가됐고 유엔의 역할도 더욱 요구됐다.

그동안 제한적이었던 평화유지활동은 1992년 제6대 유엔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의 ‘평화를 위한 제안(An Agenda for Peace)’을 통해 확대됐다.

그는 과거의 미온적인 평화유지활동에서 벗어나 유엔 PKO가 “분쟁 당사자들의 명시적 동의가 없어도 배치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로써 유엔 PKO는 정치·경제, 인도주의, 선거, 외교 및 군사 등 모든 측면을 동시에 관장하는 매우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또 그해 유엔 사무국 예하에 평화유지국(DPKO : Department of Peacekeeping Operation)을 창설해 모든 평화유지활동의 기획·관리·배치·지원과 사무총장을 대리해 평화유지활동 임무수행 지침을 제공하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유엔 상비체제(UNSAS : UN Standby Arrangement System)로 언제라도 유엔의 요청에 따라 어느 지역에도 투입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도록 구성했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 부응해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도 부대단위 파견뿐만이 아닌 옵서버 요원과 PKO군 감시단장 등 다양한 형태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한국군 해외파병의 패러다임도 변하게 됐다. 즉, 인도적 재건지원과 의료지원 위주에서 정전감시, 치안유지, 선거감독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됐다.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국방목표 설정과 활동영역 확대

1972년 설정된 국방목표 중 ‘지역적인 안정과 평화의 기여’는 1994년에 ‘지역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재설정됐다. 이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과 안보 역량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평화유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했다.

이 시기에 구 소련 및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더불어 과거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면서 외교 노선을 다변화해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물론 국제사회의 안정에 기여하게 됐다.

특히 한국군의 평화유지군 파견은 동북아의 지역군에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국제군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게 됐다. 소말리아·서부사하라·앙골라 파견과 함께 개인 옵서버 파견을 시작했다. 개인 옵서버는 군감시단으로 정전위반 감시, 중재, 협상, 순찰 및 조사활동 등을 통해 분쟁의 재발 방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 장교단을 말한다.

유엔 가입 후 본격적인 옵서버 파견은 1994년 그루지야와 인도·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고원이었다. 1997년에는 인도·파키스탄 유엔 PKO 옵서버(UNMOGIP) 단장으로 안충준 (예)장군이 파견돼 임무를 수행했다.

부대단위 및 개인 옵서버의 파견은 군사교류 협력 증진과 한국군 홍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즉, 다국적군 구성은 보통 20개국 이상으로 이들 파견부대와 상호 방문 및 교류활동을 통해 상호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개인 옵서버 요원 또한 헌신적인 임무수행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군사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한편, 평화유지활동 요원의 양성을 위해 1993년부터 북유럽 국가, 캐나다의 피어슨 평화유지교육원, 폴란드 등에 연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국방참모대학 내에 PKO 교육 전담기관을 지정해 분쟁지역에 대한 사전 연구와 평화유지활동 파견 요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또 유엔과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6년부터 주 유엔 한국대표부 내 군사문제 자문을 위한 군사담당관을 파견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유엔 평화유지사무국에 장교를 파견함으로써 유엔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현재 가장 많은 4명의 장교(대령 2, 중령 2)가 파견돼 있는데 이는 한국군의 능력이 유엔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파병정책 부서인 국방부 국제평화협력과와 합참의 해외파병과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과 더불어 1991년 설립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파견 지역에서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군·관·민이 협력해 평화유지의 시너지 효과를 배가하고 있다.

▶국방 현대화로 평화유지활동 디딤돌 조성

한국군이 세계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방의 현대화였다. 1990년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더욱 심화됐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심각한 식량난과 함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장거리미사일 발사 시험과 핵무기 개발을 은밀히 진행했다. 1996년 강릉 해안 잠수정 침투와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은 늘 상존했다.

이러한 안보 먹구름 속에서 ‘한국 방위의 현대화’는 계속됐다. 1974년부터 시작된 율곡사업은 1996년부터 방위력 개선 사업으로 계속됐는데, 주요 무기의 국산화를 통한 첨단 국방과학 기술과 방위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와 함께 6·25전쟁 당시 미군에 인계했던 작전지휘권 중 ‘평시작전통제권’이 1994년 12월 1일부로 한국군에 귀속돼 합참의장이 행사하도록 했다. 이는 대북 억제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1980년대까지 자주국방을 위한 기반 조성과 함께 견고한 한미연합 방위태세 구축은 국제 평화유지활동을 보장하는 디딤돌이 됐다. 처음에는 공병·의무부대 위주의 파견에서 1999년 동티모르에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의 전투 병력을 파병함으로써 그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한국군은 비축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8년 건군 제50주년을 거쳐 국제평화수호군으로서 2000년대를 맞이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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