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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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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24>
<24> 국군의 해외파견 패러다임 전환⑵
[`베풂과 나눔' 사랑의 빛은 상처·절망 늪서 깨어나게 평화·희망 북소리 울리다 / 2011.06.21]

2000년대 들면서 한국군의 해외파견 패러다임은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에 아프간에는 해·공군 수송작전 지원과 공병 및 의무부대를 파견했으나, 이라크에는 전투병력의 파견이 적극 검토됐다.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한 이후 30년 만에 동티모르에 이어 전투병력 재 파병은 당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국제평화와 한미동맹을 고려한 명분과 국익을 위한 파견 결정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자이툰부대의 탁월한 민사작전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칭송과 함께 동맹군에서 으뜸이었고, 그 역량은 동명·단비부대와 청해·오쉬노부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한국군의 역할은 세계화 추세에 부응해 국제적인 각종 NGO(비정부기구) 확산에 기여했다. 이들의 베풂과 나눔의 실천은 어둠과 빈곤 속에 허덕이는 난민들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동명부대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군장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2008년1월 17일)
건군 제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진고(進鼓)의 모습. 미래로 세계로 출정을 뜻하는 진고는 현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평화유지 활동 복잡하고 다차원적]
▲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변화 추세

1992년의 ‘평화를 위한 제안’은 제7대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1996∼2006)으로 이어졌다. 그는 2001년 국제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유엔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의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의 노력은 더욱 확대됐다. 1990년 8개 옵서버 및 1만여 명에 불과하던 평화유지활동은 117개 국가의 11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평화유지활동은 냉전 이후 훨씬 복잡하고 다차원적으로 전개됐다. ‘2세대 평화유지활동’은 분쟁 해결과 전후 구호재건 사업을 추진했으며, 참여자도 다변화돼 지역기구, 각종 민간구호단체(NGO)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현재는 ‘제3세대 평화유지활동’으로 비강제적 평화활동 방식으로 분쟁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물리적 방법을 통해 평화를 획득하는 ‘평화강제’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유엔은 기존의 군사작전 중심으로 운영되던 유엔평화유지사무국(DPKO)과 별도 조직으로 2005년 유엔평화재건위원회(UNPBC)를 설립해 분쟁 이후에 지속적인 평화로의 전환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 부응해 한국군 파견은 더욱 확대됐다. 2002년 황진하 (예)장군(현 국회의원)이 사이프러스 유엔평화유지군(UNFICYP)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한국군 최초로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평화유지군을 지휘해 분쟁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한국군의 자긍심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군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평화유지 활동의 기여는 2007년 제8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됐다. 또 2008년 인도·파키스탄 유엔정전감시단장으로 김문화 (예)장군, 2010년에는 해군 이범림 준장이 소말리아 아덴만의 연합해군사령부 예하 CTF-151 다국적군 지휘관을 맡기도 했다. 전쟁과 분단,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인한 세계평화 위협으로 점철된 한반도가 비로소 평화의 개척자로서 세계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다양한 민사작전 타의 추종 불허]
▲ 글로벌 피스군(Global Peace Army)으로 국가브랜드 향상 첨병

한국군 파견은 군사적 성과 외에 문화·경제적인 효과로 국가 브랜드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됐던 많은 국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민사작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모범이 됐다.

한글을 교육하는 ‘세종학당’, 가난과 절망 속의 현지 청소년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심어주는 ‘태권도 교실’, IT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여 주는 ‘컴퓨터 교실’ 등은 늘 찬사의 대상이었다.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새마을 운동’, 다양한 과정의 현지인 한국방문 연수도 홍보 이상의 효과로 직결됐다. 이러한 민사작전은 한국 근대화의 주역으로서 ‘한 손에 국방, 한 손에 건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 손에 전투, 한 손에 민사심리전’ 이 그 바탕이 됐다. 평화유지군으로서 군사적 임무수행과 함께 민사작전을 병행해 실시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평화유지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노력도 계속됐다. 2005년에는 국방부 훈령으로 ‘국군의 해외파병업무 규정’이 제정됐고, 2010년에는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리고 해외파견 전담부대인 국제평화유지단(온누리부대)의 창설로 상시 파견 체제가 구축됐다.

또 합동참모대학에서 운영되던 PKO센터는 국방대학교 직할 기관으로 조직이 확대됐고, 국가급 PKO센터로서 역할 구현을 위해 장기 발전 로드맵을 추진 중에 있다.

2009년부터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다. 2010년에는 분쟁 종료 후 안정화 절차를 숙달하는 다국적군 연합훈련인 코브라골드훈련에 해군과 해병대가,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주도의 재난구조훈련에 항공전력이 참가하고 있다. 이러한 다변화된 국제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기여함으로써 한국군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평화의 씨앗 퍼뜨려]
▲ 건군 제60주년에 평화의 북소리를 다시 울리다

한국군의 국제평화유지 노력과는 상반되게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위협받았다. 새 천년의 시작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남북공동선언’은 화해와 협력, 평화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여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 2003년 북한의 핵 확산금지조약의 탈퇴, 2006년 지하 핵실험으로 군사적 위협을 가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 ‘총성 없는 전쟁’인 국가 중요 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통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등 제4세대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현존 및 미래 위협에 대비해 한국형 K-1A1 전차의 양산과 KDX-Ⅱ/Ⅲ 구축함 및 이지스함, KF-16 전투기 등 첨단 핵심전력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잠실벌에서 스포츠를 통해 한국을 알리던 그 장소에서 건군 제60주년(2008년)을 맞이하며 국민의 군대, 세계 속의 한국군으로서 전쟁과 분쟁의 고통 속에 있는 난민들을 향해 희망과 평화의 북소리를 힘차게 울렸다.

특히 2010년은 한국군의 평화유지활동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그동안 군 위주의 전투·비전투 부대 파견을 통해 전후 재건지원 및 치안 질서유지를 위한 임무수행에서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단비부대, 지방재건팀(PRT) 요원 보호를 위한 아프간의 오쉬노부대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 1월의 아덴만 여명작전은 베트남 전쟁 이후 첫 해외 군사작전이었다. 이제 민·관·군이 협력해 다차원 평화유지활동(Hybrid PKO)의 선구적 역할을 한국군이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중동·아프리카·대서양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한국군이 심어 놓은 희망의 올리브는 그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무성한 푸른 잎사귀로 평화의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을 지구촌 곳곳에 퍼뜨리고 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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