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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14: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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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25>
<25>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해성·청마부대
[바닷길 열고 작전물자 수송 퍼펙트 하늘 길 따라 구호물품 / 2011.06.28]

자유와 평화의 시대를 기원하는 새 천년의 불꽃은 2001년 9·11테러라는 새로운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변했다. 이러한 시기를 맞아 한국군에 아프간 파견 요청이 있었고, 우리 군은 1991년 걸프전에 이어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에 다국적군 의료지원 및 해상·공중 수송작전과 난민 인도적 지원을 위해 파견을 결정했다. 그리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태풍과 열대성 기후의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바닷길은 해군 ‘해성(海星)부대’, 하늘 길은 공군 ‘청마(靑馬)부대’가 열었다.

디에고 가르시아 부두에서 미 군수물자를 탑재하고 있는 해성부대의 향로봉함 사진
작전에 투입된 청마부대의 C-130 항공기가 인도적 구호물자를 수송하고 있는 사진

▲ 9·11테러와 항구적 자유작전

지난달 1일 응징(膺懲)된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 카에다의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 타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1989년 2월 구소련군과의 10년전쟁 후 내전이 계속되던 아프간은 1996년 9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고 지도자 오마르는 이슬람 정권을 수립해 이슬람 종교적 교의에 따른 강권 통치를 실시했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은 알 카에다 조직의 아프간 내 기지·훈련장·마약거래소 등 설치를 지원하고 조직을 보호했다. 급기야 미국의 ‘빈 라덴 인도 및 알 카에다 조직의 제거’ 요구도 거부했다.

이에 미국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은 21세기 첫 번째 전쟁이자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될 것”임을 선언하면서, 2001년 10월 7일 영국·캐나다 등 다국적군과 함께 항구적 자유작전을 개시했다. 다국적군과 아프간 북부동맹은 11월 13일 카불을 점령하고, 12월 초 파슈툰 부족연맹 지도자 하미드 카르자이(현 아프간 대통령)가 임시정부 수반으로 임명됐다. 작전 개시 68일 만인 12월 14일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아프간 과도정부 수립과 알 카에다 잔당 소탕 및 빈 라덴 체포를 위한 안정화 작전(Stabilization)으로 전환했다.

▲ 아프간 대외항쟁 역사와 전장환경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로에 있듯이 아프간은 동서 교류의 십자로 중심적 위치에 있다. 무역도시 카불에서 아랍어·페르시아어·아프간어 등 12개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환경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아프간은 기원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진출, 13세기 몽골제국의 서역 진출, 19세기에는 대륙의 러시아와 해양의 영국이 각각 세력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 됐다. 그러나 아프간 정복을 꾀하던 열강들은 패퇴함으로써 제국의 무덤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또 20세기 냉전의 격전지로서 21세기에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아프간의 자연환경은 힌투쿠시 산맥 중앙부에 위치한 평균 해발고도 1000미터 이상 고원지대다. 이로 인한 건조하고 극심한 일교차는 다국적군 작전 수행에 매우 불리했다. 독립 당시 임의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아프간과 파기스탄 접경 지역인 ‘파슈투니스탄’ 지역은 탈레반의 거점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탈레반군은 구소련군과의 오랜 전쟁과 내전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게릴라전 수행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한국의 인도적 지원

다국적군은 개전 이전부터 인도적 구호작전을 주요한 작전으로 설정하고 국제기구 등을 활용해 작전을 수행했다. 즉 이슬람 세계 전체 반발을 무마하고 이들의 탈레반 지원 차단, 과도정부 안정 회복을 위해 구호물자와 비상식량을 투하하고 난민에 대한 원조금을 증액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01년 9월 24일 구호작전 지원을 위해 의료지원단 파견과 수송자산 제공 등 반 테러 국제연대에 적극 참여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지원을 위해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C-130 수송기 5대(승무원 59명)로 텐트·담요·방한복 등 100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 지원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12월 18일, ‘국군부대의 대테러 전쟁 파견계획’에 의거 육군의료지원단과 해·공군 수송지원단을 창설했다. 12월 20일, 유엔 안보리는 아프간 과도정부를 보호하고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영국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 : 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파견을 승인했다.

▲ 해성부대 파견과 역할

해상작전 지원을 위한 해성부대(海星 : 별을 보고 바다를 건너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뜻)는 12월 18일 싱가포르 셈바와 항에 전개했다. 임무는 대테러 작전 전쟁물자 수송과 인도적 지원 및 구조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비로봉·향로봉함 등 LST 4척, 최초 171명에서 총 6개 진에 연인원 823명이 임무를 수행했다. 해성부대는 싱가포르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간 정기 수송지원으로 1회 출항 시 8일 정도 소요됐다. 2003년 9월 1일 임무 종료 시까지 군수물자 15회 (4716톤), 재해물자 2회(580톤) 등 총 17회에 걸쳐 완벽한 임무 수행과 해양탐사 지원활동을 병행했다.

해성부대는 이를 통해 한국형 상륙함의 대양 항해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을 축적했으며, 탐색작전 및 조사 지원능력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외국 해군 간 군사교류를 통해 우호를 증진했다. 이러한 연합작전 경험은 오늘날 아덴만의 영웅들을 탄생시키는 연결고리가 됐다.

▲ 청마부대 파견과 역할

공중 수송작전 지원을 위한 제57공수비행단(靑馬부대)은 12월 18일 김해 비행장에 전개했다. 임무는 미 태평양사령부 작전지역 다국적군의 병력·물자·환자·인도주의적 물자공수 및 자국민 보호. 편성은 총 78명으로 1회 12∼15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8개 진에 연인원 446명이 임무를 수행했다.

청마부대는 정기 공수작전으로 김해와 서울공항에서 이륙, 싱가포르 파야레바를 경유해 디에고 가르시아까지 왕복하는 데 1회 6일이 소요됐다. 그리고 부정기 공수작전으로 태평양 괌 기지와 태국·필리핀을 왕복하면서 미국·태국 연합작전(Cobra Gold)과 필리핀 반군 소탕작전 등을 지원했다.

한편, 청마부대는 2003년 4월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위해 나시리야에 파견된 서희(공병건설단)·제마(의료지원단)에 대한 재보급 공수작전도 병행했다. 2003년 12월 20일 임무 종료 시까지 81회(화물 310톤, 병력 600명)에 걸쳐 수송한 거리는 지구 둘레 35바퀴에 해당하는 144만 여㎞ 항적거리다.

해성·청마부대는 걸프전에 이어 다국적 연합작전으로 장거리 해외 전략 공수 및 해상 보급작전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했다. 또 군사작전뿐만 아니라 초국가적·인도적 구호작전을 통해 국제공조체제를 유지했다. 해성·청마부대의 혁혁한 임무수행의 뒤를 이어 2002년 의료지원단인 동의부대, 2003년에 공병건설단인 다산부대가 각각 파견돼 전후(戰後) 재건지원과 평화정착을 위한 맥(脈)을 이어갔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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