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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13: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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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타-6·25 결정적 전투들 ③ 영천전투
[과감한 지휘결심으로 북한군에 치명타 `전세 역전' 이끌어]

영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에서 위기를 구한 구국의 일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국군 8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6·25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전투였다. 한국군 8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을 섬멸하고 승기를 잡았다.

1950년 8월 말 북한군 2군단 15사단은 영천 동북 입암리에서 2개 연대를 증원받고 최종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영천을 점령한 다음 대구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국군 8사단은 보현산과 입암 남쪽 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해 이미 8월 말께부터 전초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때 8사단 10연대는 3사단에 배속돼 포항일대에서 작전 중이었다.

영천은 신령ㆍ구산동ㆍ입암으로부터의 도로 교차점이며 대구와 경주 방향으로의 도로망이 발달되어 있고 중앙선ㆍ대구선ㆍ동해남부선 등 철도의 분기점으로 대구와 34㎞, 경주와 28㎞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돌파될 경우 대구와 경주 방면이 위협을 받게 되며 국군 1ㆍ2군단이 분리되는 동시에 동서 간의 보급로가 차단된다. 따라서 이곳은 낙동강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 북한군의 9월 공세와 영천의 위기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1950년 9월 2일 전 전선에 걸쳐 공격을 명령했다. 북한군 15사단도 이날 야간 영천을 목표로 일제히 공격했다. 국군 8사단은 적의 야간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3일 새벽 우일선 16연대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면서 영천북방 기룡산 일대로 철수했다.

국군 8사단은 4일 오후까지 기룡산 능선을 따라 방어선을 편성했다. 사단은 왼쪽부터 21연대, 16연대와 3연대 1대대, 7사단 5연대를 배치했다. 육군본부는 신령에서 작전 중인 7사단 8연대를 영천의 8사단으로 배속 전환시키고, 7사단 공병대대도 추가로 투입해 영천지구의 전력을 강화했다.

적 15사단은 9월 5일 1시 각종 포의 지원 하에 전차 5대를 선두로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국군 8사단은 중앙의 16연대와 3연대 1대대가 적 주공의 공격을 받아 수 시간 만에 종심 깊이 돌파돼 위기를 맞았다. 좌우측 21ㆍ5연대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부득이 영천 북방으로 물러났다.

육군본부는 5일 지휘 일원화를 고려해 국군 8사단을 2군단으로 배속 변경했으며, 이날 즉시 유재흥 군단장은 영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군단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에는 6사단장 김종오 대령, 1사단장 백선엽 준장, 군단 참모장 이한림 대령과 작전참모 이주일 대령 등이 참석해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 군단장은 적이 영천 돌파에 주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군 1사단과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를 8사단에 배속해 영천을 고수하기로 했다. 당시 다부동과 신녕도 위기였기 때문에 이는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다. 그리고 군단장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부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직접 미 1기병사단과 8군사령부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했다. 적측에서도 이날 영천 점령의 지연 책임을 물어 15사단장 박성철을 경질하고 부군단장 조광열을 임명해 영천 돌파를 재촉했다. 이날 밤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중앙의 16연대가 영천 외곽까지 밀리고 있었다. 이때 사단장 이성가 준장은 8연대로 역습을 전개해 가까스로 적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게 됐다.

■ 적의 돌파구 봉쇄와 반격 준비

9월 5일 야간부터 북한군 15사단은 영천을 공격하기 시작해 다음날 미명 수대의 전차를 선두로 읍내로 진입했다. 기습을 당한 16ㆍ8연대는 더 이상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영천 남쪽으로 철수했으며, 영천을 점령한 적은 곧바로 경주 방면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8사단장은 즉시 군단에 증원 부대를 요청하고 오수동에서 철수부대를 재편성했다. 이날 오후 좌전방 21연대를 공격하던 적 15사단 45연대도 남하해 영천의 돌파구 확대를 기도했다.

이날 오전 사단 공병대대는 군단장의 요청으로 도착한 미군 전차 1개 소대(5대)의 지원 하에 영천읍내로 돌입했다. 공격부대는 영천역을 경비하고 있던 소수의 적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했으며, 이때 40여 대의 차량과 10여 문의 대전차포를 노획했다. 공병대대는 전차의 지원 하에 완산동으로 진출했으나, 저녁 무렵 조교동 일대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을 위험이 있어 다시 물러났다.

9월 6일 오후 국군 2군단의 증원부대인 1사단 11연대와 6사단 19연대가 영천에 도착했다. 이로써 8사단은 비로소 영천 동북방에서 돌파 저지선을 형성하고 예비부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적은 영천 북동에서 큰 돌파구를 형성하고 국군 전선을 절단하려는 기세로 임포동으로 전진 중이었다. 적 103연대와 73연대는 돌파구의 견부를 확대하기 위해 21연대를 공격 중이었다.

9월 7일 새벽 국군 21연대가 적 103연대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했으며, 19연대도 아침 무렵 적의 보급지원부대를 기습해 큰 전과를 올리고 다음날 오후 2시 45분 영천을 장악한 적을 격멸하고 영천을 다시 탈환했다.

육군본부와 2군단의 기민한 지휘조치에 따라 9월 8일에는 적의 돌파구를 봉쇄하기 위한 연결된 방어선이 형성됐다. 방어선은 영천을 중심으로 적의 진출로를 따라 북쪽의 선천 21연대로부터 남쪽의 아화 5연대까지 낚싯바늘 모양으로 편성됐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대 배치는 적의 돌파구 저지는 물론 돌파구 첨단의 후방을 차단하고 반격으로써 적을 포위 섬멸하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 총반격작전과 적 부대의 포위 섬멸

국군 2군단은 10일부터 총 반격전을 개시했다. 군단은 영천 북쪽에서 21ㆍ19연대 양개 연대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천 남쪽에서는 5연대를 선봉으로 총 5개 연대가 반격했다. 5연대는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 하에 임포동 부근의 적을 기습해 차량 50대, 야포 10여 문을 파괴하는 전과를 달성했으며, 10ㆍ8ㆍ11연대도 미군 전차의 지원 하에 일제히 유상동, 유하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16연대는 재편성 후 작산동으로 진출해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적을 추격했다.

8연대는 우측 11연대가 1사단으로 복귀하자 그 지역까지를 담당하고 5연대와 협조해 북진했다. 5연대는 임포동 부근의 적 56연대 본부를 공격해 전차 2대, 박격포 6문을 노획하면서 적을 격멸했으며 이로써 5일간이나 차단됐던 영천~경주 사이의 도로가 완전히 개통됐다. 이무렵 적은 퇴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총반격을 받아 거의 전멸된 상태에서 분산 철수하고 있었다.

영천 남쪽에서 적을 추격하던 10연대는 11일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21ㆍ19연대 사이 신흥동을 경유해 곧바로 평천동으로 진출했으며, 21ㆍ19연대도 월곡동ㆍ운천동으로 각각 진출해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각 공격부대는 12일 마침내 9월 공세 이전 8사단 주저항선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반면 적 15사단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 영천전투의 결과

영천전투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돌파되느냐 사수하느냐를 가름할 만큼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였다. 특히 9월 5~6일 대구와 경주가 위협받을 무렵에 영천이 돌파되어 그 위기가 더욱 가중됐다. 북한군 2군단은 5개 연대를 투입해 영천을 점령하고 경주로 진출하려 했으나, 국군은 이곳에 신편된 7사단 3개 연대는 물론 1, 6사단의 각 1개 연대도 투입해 3개 사단으로 방어조치를 취하는 등 육군과 군단의 시의 적절한 지휘조치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국군은 영천 부근에서 적 사살 3799명, 포로 309명, 전차 5대 파괴, 장갑차 2대, 차량 85대, 소화기 2327정 등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달성했으며, 후에 적의 지휘부가 평가한 바에 의하면 영천의 상실로 전체 작전의 패색이 짙게 됐다고 분석했다.

<양영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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