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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6 09: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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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일보]나와 6·25-미니 戰史[13] 9·28 서울 수복
[행주·마포·신사리서 연합군, 한강 도하 인천상륙 2주 만에 수도 서울 완전 회복]

인천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유엔군은 서울 수복을 위한 진격을 개시했다. 미 제1해병사단(국군 해병연대 배속)은 서울의 서쪽에서 시가지를 향해 공격했고, 미 제7보병사단(국군 제17연대 배속)은 서울의 남쪽에서 북한군 증원 차단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돌파해 북상하는 미 제8군과 연결하도록 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2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서울을 방어하려 했다. 그들은 서울의 시가지 교차로마다 장애물을 설치해 시가전 준비를 갖추는 동시에 연희고지와 안산에서 아군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려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서쪽과 남쪽에서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한·미 연합군은 행주와 마포, 신사리에서 한강을 도하한 후 연희고지와 망우리, 구의동 일대의 북한군 진지를 공격해 9월 26일까지 서울 시가지의 절반 정도를 점령했다. 27일에는 공격 부대가 삼각지와 남대문, 회현동 일대의 북한군 잔적을 격멸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공격 부대들은 북한군을 서울 시내에서 쓸어내듯 소탕하며 의정부 방면으로 공격을 계속했고, 28일 북한군의 저항은 끝났다. 서울은 인천상륙 후 2주일, 북한군에게 피탈당한 지 3개월 만에 완전히 수복되었다.

29일 정오 중앙청에서는 감격의 수도 탈환식이 거행되었다. 이 행사를 통해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수도 서울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계했으며,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전쟁에서 적의 침공으로 상실했던 수도를 되찾는다는 일은 어느 한 전투의 승리 또는 어느 한 지역의 회복과는 다른 특별한 의의가 있는 일이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시점에 퇴로를 차단당한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은 산악지대를 통해 북쪽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그때 패잔병이 되어 38선을 넘어간 북한군 병력은 2만~3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이들을 추격하며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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