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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09: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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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조선일보]나와 6·25-미니 戰史[18] 중공군 1·2차 공세
[운산·희천서… 장진호에서 중공군, 공세 개시]
[유엔군 지도부, 적 과소평가… 중공군 2차 공세에 후퇴]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점령하자,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추수감사절까지는 전쟁을 종료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전 병력을 투입해 최대한 빨리 압록강과 두만강 선까지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1950년 10월 24일 10시, 국군과 유엔군은 '추수감사절 공세'를 개시했다. 청천강을 도하한 미 제8군은 압록강을, 함흥과 흥남을 점령한 미 제10군단은 장진호와 청진으로 향했다. 국경을 향해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다음날 운산과 온정리 일대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습을 받았다. '중공군 제1차 공세'의 서막이었다. 은밀하게 압록강을 도하한 제13병단 예하의 5개 군이 적유령산맥 남단에 배치되어 운산-희천 방향으로 공격하고, 나머지 1개 군은 장진호 북쪽에서 아군의 전진을 저지했다.

10월 26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최초로 압록강변의 초산에 입성했지만, 다른 축선의 아군 부대들은 중공군의 저항으로 공격이 좌절되거나 포위상태에 처했다. 유엔군의 추수감사절 공세는 중공군 공세로 좌절되었다.

중공군의 개입을 인정한 맥아더 원수는 그들의 조직적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공세를 계획했다. 11월 24일 국군과 유엔군은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중공군은 다음날인 11월 25일 기습적인 반격, '제2차 공세'를 개시했다. 아군의 공세를 예상한 중공군은 제13병단이 적유령산맥 남쪽 일대에서, 제9병단이 장진호 및 개마고원 일대에서 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히도, 유엔군 지도부는 중공군이 의용군으로 구성된 몇 개 사단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는 조직적인 지휘 체계를 갖춘 30개 사단의 약 30만 명이 투입되고 있었다. 중공군은 주공을 미 제8군의 우측방에 지향시켜 청천강 이남으로 진출했다. 동부전선에선 장진호 일대에서 미 제1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했다. 이로 인해 미 제2사단은 군우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호 계곡에서 상당한 인명을 희생한 끝에 가까스로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12월 2일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철수명령을 하달했고, 12월 5일엔 평양을 포기하고 38도선을 향해 남하했다.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역시 흥남지역에 집결, 해상철수를 단행함으로써 북한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손규석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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