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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09: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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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타-英·佛 등 9개국 군대에 한국인 병력 지원됐다
국방일보-기타
英·佛 등 9개국 군대에 한국인 병력 지원됐다
6·25전쟁기 카투사제도와 유엔참전부대

새해를 맞아 본지 지면개편의 일환으로 국방·안보 분야의 주목할 만한 학술논문이나 세미나를 부정기적으로 소개하는 국방아카데미를 신설한다.

신설된 디펜스 데일리 아카데미 코너는 국방·안보 관련 논문이나 세미나를 소개함으로써 관련 분야의 학문적 연구 진흥에 일조하고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창구가 될 것이다. 편집자

6·25전쟁 당시 미군뿐만 아니라 영국군·호주군 등 영연방군과 프랑스군, 벨기에군에도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다는 사실이 학문적 연구로 확인됐다.

그동안 미군에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다는 카투사(KATUSA)에만 주목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은 유엔참전국 군대에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음이 밝혀진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연 4회 발행하는 군사사 전문학술지 ‘군사’(軍史)의 최신호인 69호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문관현 연합뉴스 기자의 논문 ‘6·25전쟁기 카투사 제도와 유엔참전부대로의 확대’를 수록했다.

미군을 지원한 KATUSA 외에 다른 영연방군 등에도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다는 사실은 2008년 6월 초 문 기자의 연구결과를 담은 국방대 학위논문 제출 심사과정에서 외부에 처음 알려져 같은 달 일부 언론의 6·25 특집기사를 통해 이미 부분적으로 소개됐다.

이번 논문은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문 기자의 연구결과가 학술적 결과물로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이번에 군사지 수록 논문을 통해 정식으로 대외 공개된 문 기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한국인 병력은 미국·영국·캐나다·호주·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그리스 등 총 9개국 군대에 지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 기자는 “현재로선 한국인 병력이 지원된 참전국은 9개국이 확인됐지만 다른 참전국에도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며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지역 참전국 군대에 한국인 병력이 지원된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 기자는 당시 유엔군 회원국에 대한 한국인 병력 지원과 관련한 공식 문서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해 참전용사들을 집중적으로 인터뷰, 교차 증언을 통해 당시 유엔군을 지원한 한국인 병력의 규모와 실체를 역추적했다.

영국의 경우 조지 가드 국제한국전참전향군연맹(IFKWVA) 회장의 증언뿐만 아니라 영국 육군대장 안토니 파라 호클리 경의 6·25전쟁 관련 저서를 통해 한국군 병력이 지원됐음이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파라 호클리 경은 총 100여 명의 KATCOM(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Commonwealth Division) 요원들이 영국군에 배치됐었다고 그의 저서에서 이미 오래 전에 공개한 상태다.

캐나다의 경우 왕립22연대 소속 참전군인인 폴 레이천 캐나다 재향군인회 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1952년 당시 KATCOM 소속의 한국인이 캐나다군에 배속돼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벨기에군에도 한국인 병력이 지원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벨기에 수도에 세워진 한국전쟁 참전기념비의 전사자 명단이다. 이 참전기념비에는 1953년 3월 9일 전사한 차용환 병장 등 9명의 한국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군의 경우 자신이 프랑스군에 파견돼 근무했음을 확인하는 증언이 확보됐다. 평양 출신 참전용사 임응상(77) 씨는 1950년 12월 30일 대구 신병훈련소 10교육대에서 15일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1951년 2월 10일 동기생 100명과 하께 프랑스군에 배속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스군에 배치된 한국군 병력에 대해서는 참전 그리스군 예비역 장성의 증언이 나왔다. 스틸리아노스 드라코스 예비역 소장이 그리스군 대대 단위에 50명의 카투사들이 배속됐다고 증언한 것.

네덜란드의 경우 아른헴 부근에 세워진 한국전쟁 참전기념관 명판에 한국인 전사자 명단을 명기하고 있어 역시 참전이 분명하다. 특히 네덜란드 당국이 전사한 한국인 20명에게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자유훈장’을 수여한 사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문 기자는 “KATUSA를 포함해 유엔군 내에서 한국인 병력들이 6·25전쟁 당시 전투에 기여한 공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6·25전쟁 당시 KATUSA들이 전투병과 부대의 일원으로 미군과 함께 최일선에서 피를 흘려가며 전투한 공로도 보다 적극적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전사전문가들은 이번 연구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6·25전쟁 전문가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남정옥 연구원은 “미군뿐만 아니라 영국·캐나다·호주 등 연연방군,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그리스 등 유엔참전국 군대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9개국에 한국인 병력이 지원된 것은 국제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며 “KATUSA 제도의 확장 과정을 보면 단순히 미군만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유엔군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운용된 제도임을 보여 준다는 측면을 특히 눈여겨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 박사는 특히 이번 연구가 이승만 대통령이 7월 14일 국군 작전지휘권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한 조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 통제하에 한국군 병력을 맡긴 것은 한국군이 유엔군이 아니면서도 유엔군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려했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번 문 기자의 연구는 그런 평가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이 유엔 회원국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한국인 병력이 유엔군 참전부대를 지원, 실질적으로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전한 것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 남 연구원의 분석이다.

나아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거둔 활약에 한국의 직접적 기여가 컸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가 가능할 전망이다. 문 기자의 논문이 수록된 ‘군사’지는 군에서 발행하는 전문학술지 중 인문과학 분야에서 유일하게 학술진흥재단 학술지 등재 후보지로 등록됐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군사편찬연구소 관계관은 “교수·연구원이 아닌 기자의 논문을 군사지에 수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문 기자의 논문이 그동안 연구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을 연구한 점을 높이 평가, 수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 문관현 KATUSA 전우회 사무총장-“미군 외 다른 유엔참전국 활약상도 되돌아볼 때”

“KATUSA 전우회를 만들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참전용사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분들의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 것이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죠.”1990년대 초미 2사단 수색대 카투사로 복무한 문관현(42·사진) 연합뉴스 기자는 2007년 11월 KATUSA 전우회가 설립된 이후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만큼 전우회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런 문 기자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6·25전쟁 때 프랑스군이나 영국군 등에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노병들을 수시로 접했지만 그분들의 정체를 서류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당시까지만 해도 미군에 지원된 KATUSA 이외에 다른 유엔군에 지원된 한국군 병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 흥미를 느낀 문 기자는 이들의 사례를 정리하면서 이번 연구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문 기자는 “국방부·통일부 등 안보 관련 정부부처를 출입하면서 평소 국방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며 “좀 더 전문적인 국방지식을 쌓기 위해 국방대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유엔군을 지원한 한국군 병력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다”고 연구과정을 설명했다.

6·25전쟁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들과 접촉하면서 이 분야가 아직 연구가 안 된 분야이고, 연구 가치도 있음을 확신한 끝에 더욱 열정적으로 파고 들게 됐다.그 결과물이 국방대학교 석사논문과 이번 ‘군사’지 69호에 수록된 논문이다.

문 기자는 “연구를 위해 참전 각국 군과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군에서도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며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원해 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논문 작성 이후 6·25 전쟁 참전국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호주 전쟁기념관에서 주한 호주무관보좌관을 통해 ‘군사’지에 수록된 제 논문을 전시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6·25전쟁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미군의 역할만 부각돼 왔지만 미군뿐만 아니라 호주나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엔참전국의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겠죠.”

사진설명
위:1951년 초 경기도 덕정 인근에 배치된 호주군 대대에 배속된 KATCOM과 호주군. KATCOM은 한국 육군이 관할하는 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마치고 호주군에 배속돼 호주군과 동일한 군복과 무기를 지급받았다.
가운데:1950년 9월 23일 경기도 지역에서 미 제24사단 21연대 L중대 카투사인 분대장 안낙천(오른쪽)과 조병제 상병은 전투 중에 수류탄으로 인민군 전차 T-34를 폭파시켰다. 6·25 당시 수많은 한국인 병력이 KATUSA 혹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유엔군과 함께 최일선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아래:문관현 KATUSA 전우회 사무총장

<글=김병륜 기자 lyuen@dema.mil.kr·사진=KATUSA 전우회 제공>

[국방일보-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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