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제 T-34 전차, 당시 최신 모델… 국군의 무반동총·로켓포 역부족
6·25전쟁 초기 국군이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북한군이 전면에 내세운 소련제 T-34 전차 때문이기도 했다.
T-34 전차는 소련이 1939년부터 생산한 당시 최강의 전차였다. 총 6만4525대가 생산돼 단일 모델로 최다 생산 기록을 세웠다. 특히 북한에 제공된 T-34 전차는 1944년에 개량된 최신 모델이었다. 김일성은 "우리는 무소불위의 전차를 가졌다"고 큰소리쳤다.
이 전차는 전면 장갑 두께가 79㎜로 당시 우리 국군이 가진 대전차무기에 정통으로 맞아도 끄떡없었다. 국군은 57㎜ 무반동총과 2.36인치 로켓포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 1950년 6월 28일 서울 시내에 진입한 북한군의 T-34 전차/조선일보 DB
북한은 정권 수립 전부터 전차부대 창설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1947년 5월 우수 자원을 선발, 소련군 전차사단에서 훈련을 받게 했다. 1948년 9월 9일 정권 수립과 함께 105전차대대를, 12월에는 소련군이 남긴 전차 60대 등으로 제115전차연대를 창설했다. 1949년 5월에는 전차를 추가로 받아 제105전차여단으로 증편했다.
북한군은 전차를 분산하지 않고 핵심 축선에 집중 배치했다. 포천·의정부 축선에 80대, 동두천·의정부축선에 13대, 문산·서울축선에 27대를 배치했다. 한강·김포축선에는 독립전차대대 13대를 배치했다.
국군 장병들 사이에는 '대전차 공포증'이 퍼졌다. 북한군은 이를 역이용, 전차와 비슷한 SU-76 자주포를 전차인 양 앞세우고 공격하기도 했다. 국군 장병들은 육탄 방어로 싸웠다. 전차에 뛰어올라 상부 뚜껑(해치)을 열고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투척했다. 하지만 3개월 동안 국군이 육탄 공격으로 파괴한 전차는 26대에 불과했다.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3.5인치 로켓포는 7월 10일 처음 보급됐다. 미 24사단은 미국 본토에서 긴급 공수된 이 로켓포로 7월 19일 하루 동안 8대의 T-34 전차를 파괴했다.
남한에 처음 반입된 전차는 7월 4일 부산에 상륙한 미 제24사단 예하 전차중대의 M24(체피) 전차 14대였다. 이후 M4A3(셔먼) 전차와 M46(패튼) 전차, M26(퍼싱) 전차 등이 속속 도착했다
[최용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