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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09: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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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85>수도 서울 수복과 전사적 의미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85>수도 서울 수복과 전사적 의미
국가의 중심으로 전쟁 수행 능력 회복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전략가가 수립한 전쟁 계획의 핵심은 적의 수도(首都)를 조기에 점령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적의 수도는 인체의 급소에 해당한다. 이곳은 한 국가의 정치·군사·경제·문화적 중심으로 이곳을 잃게 되면, 그 국가는 전쟁 수행 능력을 모두 상실하기 때문이다. 전략가들이 전쟁 계획에서 수도를 중시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실제로 프로이센의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적국의 수도를 반드시 취해야 할 ‘물리적 중심(重心)’에 해당하는 제1의 군사목표로 여겼다. 클라우제비츠와 동시대를 살며 나폴레옹을 연구했던 스위스의 전략가 조미니도 전쟁에서 수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모든 수도는 전략적 지점이다. 왜냐하면 수도는 병참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권력과 정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수도는 한 국가의 심장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도가 위협을 받으면 상대국은 자국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반대로 수도를 잃게 되면 그 국가는 모든 통수체계가 일거에 마비됨으로써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특히 그 나라 국민들은 수도를 상실했다는 심리적 타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수도를 잃는 것은 여자가 정조를 빼앗긴 것’에 비유한 것도 그만큼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당나라가 오랜 세월을 두고 고구려를 공격할 때 지향했던 곳은 결국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이었고,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할 때도 최종 목적지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침략 앞에 무적을 자랑하던 로마군이 전율했던 것도 수도 로마가 적의 위협 앞에 놓였을 때다. 전쟁의 신으로 통하는 나폴레옹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도 적국의 수도를 목표로 공격해 이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을 석권하고 마지막 전쟁 목표로 삼았던 것도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였다. 김일성과 스탈린이 공모해 남침공격 계획을 수립할 때도 제1의 군사목표는 서울을 이틀 만에 점령하는 것이었다. 맥아더 원수가 군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모험에 가까운 무리를 하면서까지 계획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최종 목표도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탈환이었다.

서울은 정치·경제·군사적 중심지로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컸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워싱턴의 군 수뇌부를 설득하면서 상륙작전을 통해 군인 14만 명의 손실을 줄이고, 200만 시민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 국면을 공세로 전환시켜 군사적 승리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인천상륙 이후 서울 탈환은 한미연합군(해병·육군)에 의해 일주일 만에 달성됐고, 이 과정에서 한미연합군은 많은 희생이 뒤따랐으나 그 결과는 맥아더가 예상했던 최종상태(end state)를 훨씬 능가했다. 서울 탈환을 전후해 미국과 유엔의 전쟁정책은 38도선 회복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초기부터 주장했던 북진통일로 바꿨다.

미 국방부는 9월 27일 맥아더에게 내린 훈령을 통해 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정식으로 하달했고, 유엔총회도 10월 7일 한반도에서의 자주·민주·통일된 한국 정부의 수립을 의미하는 ‘통한(統韓)결의’를 가결함으로써 유엔군의 북진에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두 번에 걸쳐 북한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권고했고, 이에 놀란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군대 파병을 요청하는 최악의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결과는 결국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탈환에 따른 전승의 산물에서 비롯됐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국방일보-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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