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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0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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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77>‘이승만 라인(Line)’과 독도 수호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77>‘이승만 라인(Line)’과 독도 수호
“대한민국 수역은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 해안과 해상”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감정은 남달랐다. 그는 자신의 조국, 조선(朝鮮)이 20세기 초 일본의 무력 앞에 힘없이 붕괴되는 것을 목도(目睹)하고, 이를 되찾기 위해 40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한 애국투사다. 그는 90세까지 살면서 인생의 가장 왕성한 활동기인 30세(1905년)부터 70세(1945년)까지 40년을 오로지 미국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항일독립지사였다. 그 때문인지 그는 건국 대통령이 돼서도 일본만은 아주 혹독하게 대했다.

51년 1·4후퇴 직후 미군 수뇌부가 유엔군에 일본군 편입 가능성을 검토했을 때, 이를 알게 된 이대통령은 51년 1월 12일 “일본군이 참전한다면 국군은 일본군부터 격퇴한 다음 공산군과 싸울 것이다”며 극도의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가 장개석의 자유중국군 파한(派韓)을 극구 반대한 이유 중 하나도 “한국전선에 일본군을 끌어들일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며 53년 4월 자신의 정치고문인 올리버(Robert Oliver) 박사에게 쓴 편지에서 밝혔다.

이처럼 이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대통령 재임 동안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도의 영유권 문제였다. 그가 49년 1월 8일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는 기자회담을 가졌던 것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쐐기를 박기 위해서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이었다. 그는 일명 ‘이승만 라인 또는 평화선’을 선포해 독도를 명실상부한 한국 영토로 선언했다.

‘이승만 라인’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주권과 보호하에 있는 수역(水域)은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의 해안과 해상 경계선으로 한다”며 독도를 이 선(線) 안에 포함시켰다. 이 선언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허정 국무총리서리·변영태 외무장관·이기붕 국방장관·김훈 상공부장관이 부서했다. 이 선언으로 일본 조야(朝野)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들끓었다.

일본은 이것이 반일적인 이대통령의 작품이라며 ‘이승만 라인’이라 했고, 한국은 미국·영국·일본·자유중국이 강력 항의하자 대통령 담화를 통해 “한국이 해양상에 선을 그은 것은 한일 간의 평화유지에 있다”며 ‘평화선’으로 불렀다.이대통령은 공보처장(갈홍기)에게 “신라시대부터 왜구(倭寇) 등살에 시달려 와 나중에는 임진왜란·합방까지 됐다며, 지금 저 놈들 망했다고 해도 먼저 깨일 놈들이야.

그냥 내버려 두면 해적 노릇 또 하게 돼. 우리 백성은 순박하기 짝이 없어. 맞붙여 놓으면 경쟁이 될 수 있나 떼어 놓아야지… 어딘지 하나 금(線)을 그어 놔야지. 준비가 될 때까지 못 넘어 오게 해야 돼”라며 그 배경을 설명해 줬다. 이후 ‘이승만 라인’에 따른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韓日) 간 외교전은 치열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榮譽)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의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며 독도 수호의지를 밝혔다. 이후 정부는 54년 1월 18일 평화선 선포 2주년을 기해 독도에 ‘한국령(韓國領)’이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독도가 영원한 한국 영토임을 똑똑히 밝혔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국방일보-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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