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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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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15>인사관리와 군번부여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15>인사관리와 군번부여
이력서 접수순’으로 장교 군번 매겨

군사영어학교가 개교하고 얼마 후 재학생인 임선하(林善河)가 선발돼 국방사령부로 발령을 받고 학생들의 자력과 경비대 인사행정을 담당했다. 이것이 최초의 한국인 군 관계자에 의한 인사관리의 시작이었다. 부관 보좌관인 그는 톰슨 중령의 지시를 받고 장교 군번을 ‘이력서 접수순’에 따라 10001번부터 매겼다.

선후배나 과거 경력을 떠나 지원자를 일관되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부의 공박에도 그는 원칙을 지켰다. 이로써 소령 출신의 채병덕에 앞서 대위 출신의 이형근이 군번 1번이 됐다. 원로들이 임(林)을 ‘민주적’ 성격의 소유자라 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는 듯하다.

1946년 1월 8일, 장창국 등 1차 졸업생 8명이 참위로 임관한 이래 군영 출신자는 10110번까지 군번을 받았다. 이들은 건군의 주역으로 훗날 78명이 장성이 됐는데, 13명이 육참총장을 7명은 합참의장을 지냈다. 이후 경비사관학교생(육사1기)이 10111번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16688번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군영-경비사관학교-육사와 각 병과학교는 6652명의 장교를 배출한 후 일단 폐교됐다.

그 후 50년 9월 육사와 보병학교를 통합·창설한 육군종합학교에서 전쟁 중 7277명(해병 포함)과 현지 임관으로 9686명의 장교를 충원했다. 51년 2월 육종교는 보병학교로 개칭하고 51년 8월 제32기를 끝으로 갑종간부에 통합됐다. 육종교 출신자에게는 20만 단위의 군번이 부여됐고, 갑종은 처음엔 육사처럼 1만 단위의 10001로 하다가 67년 1월 10만 단위의 117114로 바꿨다.

병사는 100만 단위로 군 최초부대인 제1연대 1100000, 2연대 1200000과 같이 연대 수 앞에 육군 표시인 1자를 넣었다. 4연대는 관례상 ‘4자’를 피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대로 했다. 그러나 14연대가 여·순사건에 연루되고, 4연대마저 불미한 사건에 휘말리자 이내 4자는 군에서 사라졌다.

병사 군번은 전쟁 전 부대별로 부여한 7계단 53종, 전후 각 신병훈련소별로 부여한 7·8계단 97종이 동시에 운용됐다. 이런 150종의 번다한 군번으로 인사관리상의 낭비가 심하자 육군은 67년 4월 1일 이를 단일화·일련화했다.

해군의 경우, 46년 2월 해안경비대 장교에게 8만 단위 군번을 부여한 이래 50년 4월까지 80798번을 부여했다. 병사는 신병 1기부터 810만 단위를 46년 3월 12기까지 적용했고, 13기부터 811만 단위로, 다시 15기 이후 510만 단위인 5100001로 바꿨다. 해병대는 해군과 동일했지만 병사는 창설 시 910만 단위로 정했다.

공군에선 장교 군번을 5만 단위로 정해 48년 5월 항공사관후보생 1기부터 50001번부터 시작해 전쟁 전까지 50245번을 부여했다. 병사는 32만 단위로 320001에서 321956번까지 부여했다.

군무원은 초기에 문관 인사계에서 군속령(대통령령 제333호)에 따라 획득 관리하다가 52년 3월 14일 군속의 순번을 일제히 부여했다. 6자리로 하되, 육군 A7, 공군 F6, 해병대 NM9, 해군 N8, 국방부 본부 M5로 시작했고, 4급 이하는 동일한 영문과 숫자 앞에 0을 추가해 예컨대 육군의 경우 A070001과 같이 표기했던 것이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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