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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1 09: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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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16>계급과 진급제도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16>계급과 진급제도
1946년 조선경비대 창설과 동시 계급 제정

우리 군은 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창설과 동시에 계급 호칭과 계급장·휘장을 제정했다. 구한말 제도를 참고해 장교·하사관·병졸의 3등급으로 정하고, 병졸은 일등병사·이등병사, 하사관은 대특무정교·특무정교·정교·특무부교·부교·참교, 장교는 위관으로 정위·부위·참위와 영관으로 정령·부령·참령으로 나눴다. 당시 장관급은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칭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그해 12월 1일 현재와 같이 장교는 장관급을 대장∼준장, 영관을 대령∼소령, 위관을 대위∼소위라고 했다. 하사관은 특무상사·일등상사·이등상사·일등중사·이등중사·하사로, 사병은 일등병·이등병으로 했다. 단, 기술장교·병은 ‘기술’, 군의장교는 ‘군의’라 불렀다.

46년 초 국방사령부의 군사국에서는 경비대 장교의 임관에 앞서 계급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당장 좋은 착상이 없자 경찰 계급장을 참고했다. 위관장교의 계급장을 경찰 모자의 귀단추인 무궁화 하나를 참위로, 셋을 정위로 하되 영관은 추후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교들이 이를 못마땅해하자 46년 2월 8일 채병덕 정위의 참령 진급 때부터 바꿨다. 비숍 대령이 미군 계급장을 모방해 위관은 은색 각형으로, 영관은 태극형으로, 사병은 미군 사병의 계급장을 참고로 제작했다.

해안경비대 역시 그해 2월 1일 구한말 계급을 참고로 해방병단 장교에게 계급·계급장을 부여했다. 그리고 6월 1일 해안경비대로 정식 발족할 때 미 해군 계급을 참고로 사병까지 적용했다. 해군을 상징하는 ‘해군기’를 제작해 함상이나 건물에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계급이 제정된 후 진급제도도 바로 시행됐다. 처음엔 과거의 군사 경력·직위를 참작한 특별채용과 부대 증편에 따른 특별전형 임관이 있었다. 진급은 각 부대 및 고문관 추천에 의해 개별 심사를 했으나, 46년 12월 1일 정규 진급제도가 마련돼 제1·2차 잠정진급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진급됐다.

47년 3월 1일 이후, 위관은 2월 1일과 10월 15일 연 2회 승진이 실시됐고, 대위·소령은 부대 증편과 기구 확장에 따라 특별 임관자의 기용과 함께 수시로 승진됐다. 실제 경비사관학교 1기생의 경우 소위에서 중위까지 7개월 15일, 중위에서 대위까지 5개월, 대위에서 소령까지 13개월이 걸렸다. 이 외에 사병은 미 육군제도를 준용, 복무 월수에 따라 계급별로 연 2회 실시했다.

역사상 47년 2월 1일 과도입법의회의 인준을 통해 최초로 조선경비대의 송호성 대령과 해안경비대 손원일 대령의 준장 승인이 결정됐다. 이들은 48년 12월 10일 김홍일·채병덕·이응준과 함께 준장으로 임명됐고, 49년 2월 2일 김홍일·채병덕·이응준·손원일은 소장이, 정일권과 이형근은 준장이 됐다. 취임식은 2월 16일 오후 2시 중앙청 대통령실에서 거행했다.

49년 10월 1일 창설된 공군도 바로 장교·사병의 계급제도를 마련했다. 장교 계급장은 위관이 태극표지에 무궁화의 잎사귀 수로, 영관은 태극표지에 잎과 꽃의 수로 표시했다. 사병은 격납고를 상징하는 입구(口) 자에 일등병부터 한 계급 진급 때마다 활주로를 상징하는 횡선을 하나씩 늘렸는데, 상단에 공군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새겨넣었다.

이렇듯 우리 군은 정부수립을 전후로 계급·진급제도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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