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의 역사관과 책임관
6·25전쟁 때 미국 참전의 최종 결정권자는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맥아더도 이것을 분명히 시인했다. 그는 태극무공훈장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미국이 6·25전쟁에 참전하는 데 가장 큰 공로자로 트루먼 대통령을 꼽았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66세로 6년간 대통령직에 있었다.
그의 참전 결정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군사적 요인이 작용했으나, 참전 결정은 그의 올곧은 역사관과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이익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에서 나왔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강력한 대통령, 정책결정에 따른 책임을 달게 받는 국가 지도자, 그리고 역사적 식견과 안목을 지닌 품격(品格) 있는 세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견지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적 이념이 된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전통을 존중하는 미국 국민의 대변자가 되기를 자처했고, 이를 옹호하며 강력히 실천했던 미국 역대 대통령(제퍼슨·잭슨·링컨·시오도어 루스벨트·윌슨·프랭클린 루스벨트)을 누구보다 외경심(畏敬心)을 갖고 존경했다.
트루먼은 이들 위대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자신이 해야 될 사명은 자유민주주의 역사를 미국 정치를 통해 계속 계승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그는 국방이나 외교문제처럼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들은 초당적 차원에서 취해져야 하며, 국민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이익을 위해 내린 정책결정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따라서 그는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책임을 돌리는 일은 여기서 끝난다(THE BUCK STOPS HERE)’는 삼각형 나무 패(牌)를 올려 놓고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는 매일 이 경구(警句)를 읽고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막강한 권한을 상기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정치행보를 걸었다. 그가 항상 역사적 선례와 교훈·국가 이익을 정책판단의 천칭(天秤)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 교훈과 참전 결정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반드시 과거 역사의 교훈에서 그 해답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는 최초 6·25전쟁 상황을 보고받고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전체주의 국가의 침략을 상기했다. 애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전쟁상황을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 별장에서 보고받은 다음 그가 한국 사태 수습을 위해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줄곧 생각한 것은 역사적 교훈이었다. 그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한국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다.
비행기에서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한 것은 과거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인접 약소국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공산국가의 침략에 한국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떤 약소국가도 인접해 있는 강대한 공산국가의 공격과 위협에 저항할 용기를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를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곧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발생한 공산 침략을 막지 않으면 유엔의 기초와 원칙은 난관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북한의 남침과 유사한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듯이 이를 방치하면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뿐만 아니라 유엔의 평화정신과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으로 보고 한국 참전을 신속히 결정했다. 그는 공산 침략을 자유세계의 힘으로 단호하게 응징해 제3차 세계대전의 불길을 차단하고, 나아가 유엔의 권위를 수호하겠다는 신념에 따라 한국 참전을 결정했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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