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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08: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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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10>군인정신의 사표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10>군인정신의 사표
명예·충성·용감…‘위국헌신 군인본분’

건군기에 우리 군은 1948년 제1여단장 이응준 대령이 ‘사병훈(訓)’을 만들어 ‘진정한 군인’이 되자고 장병을 독려한 이래 국군 3대 선서·국군맹서를 제정, 군인의 복무신조로 삼았다. 그 유산 위에 50년 군인복무령으로 법제화하고, 57년에는 ‘군인의 길’로 계승해 군인정신의 규범적 체계를 완성했다.

그러나 군인정신은 명예·충성·용감과 같은 명문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군문에 몸담은 군인들의 삶과 희생으로 체현돼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사표가 됐다.‘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최초의 해외의병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이국땅 뤼순의 감옥에서 1910년 3월 26일 순국일 아침 평소에 안의사를 존경하던 일본인 헌병 간수가 내민 명주천에 써준 글이다.

안의사의 유훈은 청년사관의 요람인 화랑대 교정에 세워진 비각에 아로새겨져 호국 간성들의 혼을 일깨우고 있다.60년 전, 대한민국이 건국돼 일제에 의해 단절된 국권을 회복하고 역사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과정에서 숱한 희생자와 순국선열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이념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국가와 민족 앞에 내놓은 의로운 정화였다.

49년 5월 4일, 개성 송악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서부덕 이등상사를 비롯한 육탄10용사의 투혼 역시 국군사에 길이 남을 ‘멸사봉공’의 전형이었다. 71년 7월 30일 정부는 그들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동상 건립으로 헌상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참전 전우들이 뜻을 모아 ‘10용사의 신화’라는 추모 전기를 발간했다.

당시 최영희 국방부장관은 책머리에 10용사의 감투정신을 기리며 ‘국군의 짧은 역사 가운데 빛나는 전통을 바로 세운’ 표상이라 썼다. 육군은 산화 52주기를 맞은 2001년 ‘육탄10용사상’을 제정, 부사관의 귀감으로 삼고자 했다.6·25전쟁과 파월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조국이 그들에게 부여한 수고로운 멍에를 기꺼이 지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초개처럼 버렸다.

심일 육군소령, 이근석 공군준장, 강재구 육군소령, 이인호 해군소령, 진두태 해병소위,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이름 모를 수많은 전몰용사가 그들이다. 그들은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전쟁영웅이기도 하지만, 어느 이름 모를 산하에 꽃다운 주검을 뉘인 비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역사의 질곡 안에서 대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그들, 그 영용은 청사에 빛난다. 암울한 시대에 오직 겨레와 민족의 영속을 위해 투신한 그 드높은 기상, 밝은 뜻은 한 줄기 청신한 바람과 같다. 노산은 노래했다. “뿜어서 장미를 피운 향기론 피 속에 거룩한 불사신의 이름을 새겨 산과 강과 조국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우뚝 선 힘과 정열의 상징이여.”

그날의 일, 그 뜻은 지금도 역사와 함께 흐른다. 임들의 한결같은 나라사랑 정신. 그들은 민족사에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불멸의 군신(軍神)이다. 노산은 다시 현충원 분향탑에 헌시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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