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
<16>한국인 노무자들의 유엔군 지원 | 최전선 보급품 운반 등 다양한 활동
그들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에 탄약·연료·군자재·식량·식수·보급품 등을 운반해 줬음은 물론 진지 공사와 전·부상자 후송, 그 밖에 도로·교량 보수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노무자들의 운반수단은 주로 지게였으며 당시 유엔군들은 지게가 영어 알파벳 ‘A’를 닮았다고 해서 그들을 ‘A Frame Army(지게부대)’라고 불렀다. ▲한국노무단의 유엔군 지원 휴전 때까지 유엔군에 의해 운용된 노무자의 수만 해도 노무단 노무자 9만3000여 명, 직고용 노무자 7만5000여 명, 계약고용 노무자 2만여 명, 해·공군 및 기타 기관의 노무자 1만3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 중 1951~53년간 전선부대를 직접 지원한 노무자 가운데 확인된 희생자만도 총 8794명이었다. 이러한 노무자들의 전쟁지원 활동에 관해 당시 국군·유엔군의 전투 지휘관들은 한결같이 “어떤 의미에서는 전투의 절반은 그들이 치렀다”고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다. 노무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전투근무지원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군의 전투 병력이 행정이나 그 밖에 근무지원에 투입되지 않고 전투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줬다는 데 그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무자들은 군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행정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분담했으며, 또한 최전선에서 전투 병력이 담당해야 할 임무를 맡음으로써 병력을 최대한 절약했다는 점도 역할 면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무자 운용으로 병력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6·25전쟁 동안 노무자들은 비전투요원으로서 작전상 필요로 하는 교량·도로 보수와 식량·탄약·군 장비 운반 등에 동원돼 전투부대를 직접 지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의 활동에 관해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우리는 한국노무단이라는 무명의 전쟁영웅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들은 놀랄 만한 강인함과 끈기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미군은 최소한 10만 이상의 추가 병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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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2007.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