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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4 14: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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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 -<21>휴전 반대와 에버 레디 계획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21>휴전 반대와 에버 레디 계획

한국 ‘확고한 안전보장’ 의지 다져


▲휴전을 둘러싼 한미 갈등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상 기간 동안 일관되게 “세계사 속에 힘이 없는 분단국이 확고한 안전보장 없이 무작정 세계 조류에 편승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인식 아래 휴전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대통령은 1953년 휴전회담 막바지까지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을 번복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미국이 우리 동의 없이 휴전협정에 조인한다면 여러 가지 예상치 않은 사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전달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와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한 날, 유엔군사령관은 미 대통령의 상호방위조약 교섭 용의와 경제 지원을 약속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휴전협정이 곧 성립되리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으며 이미 모종의 압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장군의 제안에 대해 “너무 늦었다”고 응수했으며 “중공군이 한국 땅에 머물러 있다면 한국이 생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의지를 전달했다.

▲에버 레디 계획

클라크 장군은 한국 정부의 휴전반대 분위기를 고려해 국군이 유엔군으로부터 철수할 수도 있다는 상황에 대비해 세 가지 우발 상황을 상정한 소위 이대통령 하야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버 레디(EVER READY) 계획을 작성하고 있었다.

즉, 53년 5월 22일 클라크 장군이 워싱턴에 제출한 이 계획은 상황Ⅰ(국군이 유엔군의 지시에 불응할 경우), 상황Ⅱ(국군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상황Ⅲ(극단적으로 국군과 국민이 유엔군에 공공연히 적대시할 경우) 등을 구분해 작성했다.

세 가지 상황은 어느 경우에서나 필요하다면 유엔의 이름으로 계엄령의 선포, 의견을 달리하는 군사·민간 지도자의 체포, 군정 선언 등도 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합참은 결과적으로 군정계획 부분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에 의해 중대한 위기가 조성된다면 부대 보존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승인했다.

한편 이 무렵 이대통령은 이미 반공포로 석방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남한 전역에 임시 비상경계령을 발하고 모든 미국 주재 한국 관리들을 귀국 조치시킴과 동시에 한국 휴전회담 대표들을 소환해 휴전반대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그는 강대국들이 미결의 장으로 남겨 놓은 분단 상황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고통을 영속시키는 것과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례 없었던 반미감정 징후가 한국 전역에서 일기 시작하고 휴전반대 시위가 그 빈도나 규모 면에서 크게 증가됐다.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있을 때 미국은 한국 정부를 설득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해결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미국은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계획을 철회하고 한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주력했으며, 이후 결과적으로 한미 간 체결된 상호방위조약과 한국 경제지원은 이대통령의 길고 어려운 정책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국방일보-200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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