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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15: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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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 -<25>미국의 6·25 참전결정과 전쟁목표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25>미국의 6•25 참전결정과 전쟁목표

北의 전면적 공격 인지 지상군 파병


▲미국의 참전결정 과정

미국에게 6•25는 어떠한 전쟁이었을까? 미국 역사에서 6•25는 남북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전쟁이었고, 태평양전쟁의 서곡인 진주만 기습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6•25가 발발했을 때 미국의 전쟁지도부는 진주만 기습 때처럼 주말의 여유를 즐기거나 공무로 워싱턴을 벗어나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주리 고향에, 국무장관 애치슨은 메릴랜드 농장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2주간의 극동 방문을 마치고 귀국 중이었다. 이때 북한군은 맥아더 장군의 표현처럼 서울에 이르는 공격로를 따라 마치 코브라가 먹이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 듯 소련제 전차를 앞세워 한국군을 사납게 강타하고 있었다.

워싱턴이 6•25를 인지한 것은 무초 대사가 북한의 남침에 대해 ‘한국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 분명하다’는 전문을 받고나서였다. 그로부터 미국은 7일 만에 맥아더의 한국전선 시찰 보고서를 참작해 지상군의 참전을 결정하고, 스미스 부대를 선견대로 파병했다. 트루먼은 한국전 참전 결정 기간을 대통령 재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그는 과거 독일과 일본의 침략 사례에서 얻은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고, 한국이 공산주의 손아귀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거나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세계의 반대에 부딪침 없이 한국을 그들의 방식대로 강요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들은 이를 확대해 나갈 것이고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연결될 것으로 봤다.

이에 미국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북한의 침략에 저항해야 되며, 국제평화기구인 유엔집단 안전보장에 의해 제재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전쟁지도부는 1주일간의 논의 과정을 통해 한국에 적용될 전쟁목표와 전략, 그리고 전쟁수행 방식을 결정했다.

▲미국의 전쟁목표와 수행 방식

미국의 전쟁목표는 두 가지였다. 최초는 유엔이 합법정부로 인정한 한국 수호, 즉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이었다. 두 번째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유엔이 결의한 자주•독립된 통일한국이었다. 미국은 전선 상황과 국제정치의 변화에 따라 이를 융통성 있게 적용했다. 이의 전제조건은 중•소의 개입이 없거나 없다고 판단될 경우였다.

그 결과 미국은 중•소의 개입이 없다고 판단될 때 38도선을 돌파해 북진했고, 중공군이 개입하자 확전을 막기 위해 휴전정책을 내놓게 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3차 세계대전 예방이었다. 이는 미국이 유럽에 비해 전략적으로 가치가 적은 한국에 미국의 군사력을 올인(all in)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의 군사목표는 북한군 격멸이었으나 전쟁목표의 이중성에 따라 달리 적용됐다. 전쟁목표가 통일한국일 때는 전쟁지역이 북한 지역으로 확대됐으나, 전쟁 이전상태의 회복일 때는 38도선 이남으로 한정됐다. 맥아더의 해임도 워싱턴과 맥아더 간의 이러한 전략개념의 해석과 적용 차이에서 야기됐다. 미국은 소련 전차와 전쟁계획으로 시작된 6•25를 신생국가인 한국이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미국은 참전을 하되 유엔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트루먼은 최초부터 유엔의 권위 아래 행동하라고 지시했고, 한국에 줄 원조가 어떤 것이든 유엔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결의를 통한 미국의 극적인 참전은 한국에는 구원이 됐고, 북한에는 미국이라는 전혀 ‘새로운 강적과의 새로운 전쟁’을 강요하게 됐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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