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최초의 이승만 대통령 군관련 사진집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군 전력증강과 군 현대화 전후 복구사업 등 진두지휘
6ㆍ25전쟁을 전후한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를 희귀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국내 유일의 최고 군사연구기관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소장 최북진)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부터 6ㆍ25전쟁 복구까지의 역사를 사진으로 담은 ‘사진으로 보는 6ㆍ25전쟁과 이승만 대통령 사진집’(사진)을 펴낸 것.
책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장장 반년간의 편집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대부분의 사진이 최초로 공개된데다 1080여 점의 사진 가운데 군 관련 사진 900여 점을 엄선해 한 장 한 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이자 건국 초기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군사편찬연구소가 1964년 창설 이래 일반 대학교와 처음으로 책을 공동 발간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크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이 대통령이 경무대(현 청와대) 시절부터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이 대통령 사후 아들 이인수(전 명지대학장) 박사가 이 대통령의 연구를 위해 연세대학교에 다량의 문서자료를 기증함으로써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연구원 측은 사료적 가치가 있는 사진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 대통령의 군 관련 사진, 특히 6ㆍ25전쟁을 전후해 국군통수권자로서 전쟁지도를 비롯해 국군의 전력증강과 군 현대화, 전후 복구사업을 담고 있는 사진들만을 선별했다. 이를 연구소가 복사하며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발간하게 됐다.
국내외 최초의 이 대통령 군 관련 사진집인 셈이다.
사진집은 1000여 부를 발행해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여단급 이상 부대와 도서관ㆍ대학교 등에 현재 배부 중이다.
사진집 편집작업을 주도한 연구소 책임연구원 남정옥(54) 박사는 “이승만 정부의 전쟁지도와 군에 대한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면서 “이 대통령의 전시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고 책 발간 배포에 대한 기대감을 털어놨다.
사진집은 또 2003년부터 군사편찬연구소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6ㆍ25전쟁사????½???ø’(총 11권)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6ㆍ25전쟁과 관련된 이 대통령에 대한 연구, 즉 전시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리더십 연구, 이승만 정부의 국방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집은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활동에 관한 사진들만을 다섯 부분으로 나눠 편집했다.
‘8ㆍ15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6ㆍ25전쟁 발발 이후 전쟁지도 및 군사외교’ ‘전후 전력증강과 추모사업’ ‘전후 반공국가와의 정상외교’ ‘전후 복구 및 대민구호’ 등으로 구분했다.
책의 핵심은 2부로 이 대통령이 전시 국가행사를 주관하는 모습과 각국 정상과의 외교활동, 전선부대 순시장면, 미군 및 유엔군과의 전시 공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 군사외교활동을 벌이는 모습, 국군 전력증강을 위한 노력, 전시 주민들에 대한 위문활동 등을 담았다.
3부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에서 제2의 전쟁을 방지하고자 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을 집중 다뤘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 전쟁 폐허 복구사업을 진행해 가는 이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 군이 교량과 학교·교회 등을 복구하고 새로 짓는 데 크게 공헌한 것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가 본 책의 성격과 사료적 가치-건국 초기 격동의 대한민국 고스란히 담겨
이 책은 6ㆍ25전쟁을 비롯해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의 재임기간(1948∼1960)을 망라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군 관련 사진집’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원수ㆍ국군통수권자로서 나라를 세우고 임진왜란 이후 민족 최대의 위기인 6ㆍ25전쟁을 지도하고 피폐해진 국토와 국가 기간ㆍ민간시설들을 복구하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역사 다큐멘트’다.
특히 이 책의 상당부분은 이승만 대통령이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민족상잔의 상징인 6ㆍ25전쟁을 지도하고 전후 군 전력증강과 현대화를 위해 진력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진으로 보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시통치사료집’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사진들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을 귀중한 자료들이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6ㆍ25전쟁 시 이 대통령의 활동과 역할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사료된다.
지금까지 6ㆍ25전쟁 시 이 대통령의 국가원수 및 국군통수권자로서의 활동과 역할을 다룬 국내외 학계의 연구성과가 매우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 관련 군 자료에 대한 일반 연구자들의 자료 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한 연구의 한계성과 4ㆍ19 이후 정치적으로 몰락함으로써 ‘연구의 편식(偏食)ㆍ제약’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직 하야 이후 1965년 하와이에서 서거하자 그에 대한 연구는 그의 ‘정치적 과오’ 또는 ‘잘못된 통치행위’에 초점이 맞춰졌고, 6ㆍ25전쟁 시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서는 2000년까지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6ㆍ25전쟁 시????½?§???긐?) 이승만 대통령의 국가원수 및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연구는 2000년 6ㆍ25전쟁 발발 50주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맹아적(萌芽的)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가 2000년 이후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전쟁지도자로서 이승만 대통령’(2004·육사 온창일 교수), ‘군 통수권자로서 이승만 대통령’(2004·연세대 김세중 교수), ‘외교가로서 이승만 대통령’(2004·충남대 차상철 교수)이 발표됨으로써 이 분야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연구는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10년 6ㆍ25전쟁 60주년을 전후해 필자는 ‘6ㆍ25전쟁과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지도’(2007), ‘6ㆍ25전쟁시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과 한강교 폭파문제’(2011)를 다룸으로써 이 대통령의 전시지도자로서의 전반적인 재평가를 시도했다.
김영호 국방대학교교수와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 홍용표 한양대학교교수, 한국경제연구원의 이춘근 박사 등도 관련 저서를 통해 6ㆍ25전쟁 시 이 대통령이 거둔 성과와 긍정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했다. 물론 이들 연구들은 이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도 비판의 끈을 놓지 않고 역사가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덕목인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료적 한계성이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진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거의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당시의 상황을 주변 배경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직접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자료의 신뢰도 측면이나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할 것이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누락되거나 소략된 공백을 메우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정ㆍ보완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60여 년 전 그때 그날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룩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진집은 그래서 ‘대한민국의 1950년대 현대사’ ‘이승만 대통령의 6ㆍ25전쟁지도’ ‘전시통치사진집’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한 국군 발전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 문학박사
■ 한미 지휘관이 본 ‘이승만 대통령’-“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지도자”
6ㆍ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전선을 누비며 전쟁을 지휘한 한국과 미국 장군들은 그를 훌륭한 영도자ㆍ반공지도자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군 최초의 대장으로 육군참모총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백선엽 장군도 “전쟁의 위기를 이승만이 아닌 어떠한 영도자 아래서 맞이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마크 클라크 장군도 “한국의 애국자 이승만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지도자로 존경한다”고 치켜세웠다.
미 8군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이승만은 위대한 애국자ㆍ강력한 지도자ㆍ강철 같은 사나이ㆍ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서 “자기 체중만큼의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밴플리트 장군의 후임인 맥스웰 테일러 장군도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8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차례로 역임한 리지웨이 장군은 이승만 사후 그의 회고록에서 “이승만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에서는 타협을 몰랐고, 자기 국민에 대한 편애가 심했으며 불가능한 일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마음속에는 깊은 애국심으로 가득했고,애국심에 의지해 오랜 망명생활을 보내고 귀국한 이후 눈 뜬 시간의 거의 전부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에서 싸웠던 대부분의 미국 지휘관들로부터 극찬의 평가를 받았다. 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미국의 고급지휘관들이 그의 사후에 내린 평가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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