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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6.04.19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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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베트남 정글의 영웅들-(15)박동원 대위와 맹호5호작전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군사기획]
[15] 박동원 대위와 맹호5호 작전
베트콩 지도부 “정면대결 피하라”

수도사단 제1연대 5중대장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박동원 대위는 중부 해안 고보이 평야에서 전개된 맹호5호 작전 ‘띤빈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영웅이다. 당시 사단은 2개 연대를 투입해 1966년 3월 23일부터 4일간의 작전으로 베트콩 소굴인 고보이 평야를 평정키로 했다.

그날 새벽 제2대대가 야간 기동으로 베트콩지역을 포위했다. 그리고 날이 밝을 무렵 6중대가 베트콩과 최초로 접촉하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베트콩은 일제히 분산해 도주하면서 띤빈마을로 집결했다.대대장 이필조 중령은 띤빈에 집결한 베트콩이 대응 준비를 갖추기 전 격파하기로 결심하고 중앙제대인 5중대에게 띤빈 점령을 명령했다. 6·7중대는 그들의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게 했다.

그때 도주하던 1개 분대의 베트콩이 5중대 3소대 전방에 나타나자 소대장 정정능 소위가 1개 분대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고보이 평야를 피로 물들인 띤빈전투의 시작이었다.당시 띤빈마을에 집결한 베트콩은 증강된 1개 중대 규모였으며 그들은 마을 전체를 요새지로 만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마을 입구까지 베트콩을 추격한 3소대장 정소위는 그들의 반격으로 전사하면서 일부 병력이 고립되는 위기가 발생했다.

중대장 박대위는 즉각 부중대장 정주영 중위를 3소대장으로 임명해 소대를 수습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중대본부를 장악해 무릎까지 빠지는 늪지를 돌파하며 마을 외곽으로 전개했다. 그 순간 갑자기 150m 전방 대나무 숲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저격사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때 날아온 한 발이 박대위의 바지를 꿰뚫었고 또 한 발은 귀밑을 스치며 바로 뒤 통신병 철모를 가격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그 사이에 3소대의 위기를 수습하고 측방으로 기동하던 부중대장 정중위가 베트콩의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박대위는 즉시 화기소대장 김주천 중위에게 3소대를 통합 지휘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목표지역에 연막차장을 요청한 후 자신이 직접 돌격대를 지휘해 목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박대위의 돌격은 네 차례나 계속된 끝에 요새화된 적의 장애물 지대를 넘었다. 5중대의 포효와 같은 돌격에 기가 질린 일부 베트콩이 진지를 이탈하면서 난공불락과 같던 적 진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대장 바로 우측에서 박문규 소위의 1소대가, 좌측에서 이청 중위의 2소대가 각각 목표에 진입하면서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베트콩의 기관총 사격이 뚝 그쳤다. 그러나 진지 소탕 과정에서 또다시 박소위가 전사했다. 띤빈전투에서 5중대는 베트콩 75명을 사살하고 포로 30명과 용의자 99명을 검거했다. 반면 중대도 장교 3명을 포함해 9명이 전사하고 13명이 부상했다. 경상자도 35명이나 됐다. 5중대의 피로 물든 승리였지만 그 의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띤빈전투 후 고보이 주민들은 맹호의 전력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스스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또 맹호5호 작전에서 호된 경험을 치른 베트콩 지도부는 “가급적 한국군과 정면 대결을 피하라”는 지시를 하달했음이 노획된 베트콩 문서에서 확인됐다. 이후 베트콩의 대응이 소극적으로 전환되면서 한국군의 피해는 현저히 감소됐다는 점에서 맹호5호 작전의 의의는 매우 크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일보-200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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