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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6.08.14 09: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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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5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베트남 정글의 영웅들-(26)신상집 대위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군사기획]
[26] 신상득 대위
"적 정보 수집 베트콩 귀순공작 등 맹활약"

1965년 초, 전투부대 파월이 논의될 때 신상집 대위는 해병대사령부 소속으로 미8군 528군사정보대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베트남에서 근무했던 미군 정보장교로부터 베트남전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면서 게릴라전에서 정보 활동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전문 정보요원의 입장에서 “파월되는 청룡부대에 군사정보대를 편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파월 병력 상한선에 부딪쳐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신대위의 건의가 계속되고 있을 때 정보부대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한 국방부 파병기획단은 주월사령부 차원에서 각급 부대에 군사정보대를 추가 편성키로 결정했다. 파월을 불과 몇 주 앞둔 시점이었다. 그에 따라 해병대사령부는 신대위에게 “포로 신문(訊問)반을 편성해 여단과 합류하라”는 긴급 명령을 하달했다. 반장에 임명된 신대위는 자신을 포함한 4명으로 신문반을 급조해 포항에서 훈련 중인 청룡부대와 합류했다.

그 후 10월 9일, 깜란에 상륙한 신문반은 주월사로부터 육군 장교 3명, 남베트남 통역관 2명 등 10여 명을 배속받아 해병대 군사정보대로 증편했다. 신대위는 정보대장에 임명됐다. 이어서 정보대는 파월 한국군 최초의 공격작전이었던 까두산 전투를 시작으로 뚜이호아를 거쳐 69년 9월 쭈라이로 이동하면서 베트콩의 취약점을 수집, 작전에 기여했다.

특히 쭈라이 일대는 베트콩 세력이 어느 곳보다 강력했기 때문에 정보대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신대위는 대원들과 함께 지역 첩보를 수집하는 한편 작전간 포로가 획득될 경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현장으로 출동해 신문한 첩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함으로써 성과를 극대화했다. 한편 신대위와 대원들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베트콩의 핵심 거점에 잠입, 귀순 공작을 전개했다. 베트콩 지역에서 그들에게 귀순 공작을 전개하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아 오는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작전이었다.

특히 현지 주민들과 외모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조금만 세밀히 관찰한다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 신대위와 대원들은 적지에서 1개월간의 공작 활동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지방 게릴라 부책임자 등 7명과 함께 그들이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소총 3정과 탄약 등을 휴대하고 귀순하게 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외에도 많은 활동이 있었지만 정보부대 특성상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빈선군 일대에서 출처 불명의 C-레이션과 총기·탄약 등이 베트콩에게 제공되던 보급 조직을 탐지, 일망타진한 것도 군사정보대의 공로였다. 그처럼 청룡부대가 거둔 작전 성과는 노출되지 않은 많은 요원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보공작으로 거둔 성과는 적의 내분을 일으켜 그들의 사기를 급격히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는 매우 컸다.

이처럼 은밀히 이루어진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해 여단장 이봉출 준장과 신대위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며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신대위와 같이 음지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공적을 찾아내 후세의 사표로 삼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일보-200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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