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칼럼] |
"미래의 신귀족" |
과거 우리나라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문무를 겸비했으며 전쟁이 나면 솔선해 앞장서 나가 싸우는 것을 당연시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자유 시민만이 무장을 할 수 있었으며, 특히 아테네에서는 청년들이 2년간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마친 후에야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인 민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대체로 고대 국가에서는 국방의 임무가 엘리트층의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절대왕정 시대가 막을 내리고 주권재민의식이 보편화되면서 군대도 과거의 귀족 군대나 용병이 아닌 국민 군대의 성격을 띠게 되고 국민개병제가 도입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전쟁은 제한된 일부가 아닌 전체 국민들의 관심사가 됐고 병역은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군대가 강했던 이유는 바로 상대방 군대가 아직도 절대왕정하의 ‘국왕의 군대’ 성격을 띠고 있었던 데 반해 민족주의적 자각과 국민의 군대로서의 애국심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국왕이나 귀족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으나 나폴레옹군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국민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 국민들의 국방 참여 의식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주권재민의식이 결여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진정한 민주주의와 국민의식이 강한 나라일수록 군대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안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비굴하게 자기 방에 혼자 숨어 있는 아들을 아들이라고 볼 수 없듯이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을 어떻게 민주 국민이라고 하겠으며, 더구나 나라의 지도자로 뽑을 수 있겠는가. 선진국일수록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경우, 국민들 특히 지도층들이 솔선해 국방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전통이 수립돼 있다. 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닉슨·포드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은 다 참전용사들이었다. 더구나 6·25전쟁 때에는 아이젠하워의 아들을 비롯해 미군 장성의 자녀 142명이 참전해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했다. 그것도 남의 나라 전쟁에서. 과거에 TV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배경으로 한 ‘챔프 선생님’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아침 조회 때 교장 선생님이 최근 유럽전선에서 전사한 그 학교 졸업생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마다 어린 학생들이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명문학교 졸업식 때마다 남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아 건강한 남학생들이 모두 책 대신 총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 영국이기에, 비록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의 영광에는 못 미치더라도 아직 유럽 강국으로서의 지위만큼은 결코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응해 전후방 곳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 국군장병들이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신귀족’이라고 불려 손색이 없을 것이다. <원태재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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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200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