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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5 10: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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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10)이무표 대위와 안케전투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군사기획]
[10] 이무표 대위와 안케 전투
16일만에 638고지 가장 먼저 점령

1972년 4월11일, 안케전투가 시작되자 수도사단 기갑연대장은 수색중대와 3중대를 증원해 적의 근거지로 확인된 638고지를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만 늘어날 뿐 진척은 없었다. 16일에는 미 공군의 네이팜탄 등 가용 화력을 총동원해 638고지를 초토화시킨 후 공격을 계속하기로 했다.

가공할 만한 화력이 638고지에 집중되면서 고지 정상은 불바다가 됐다. 순식간에 시커먼 민둥산으로 변해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군의 공격이 재개되자 불가사의하게도 적의 저항은 여전했다.

당황한 사단장은 18일 아침, 작전회의를 열어 안케전투를 연대작전으로 전환하고 사단의 가용 병력을 총동원하도록 했다. 그 자리에서 “638고지를 가장 먼저 점령한 용사에게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사단장의 결심에 따라 기갑연대 전체와 1연대·26연대 병력까지 중대 단위로 증원되면서 총 18개 중대 1894명의 병력이 안케지역에 투입됐다. 그럼에도 공격은 진척되지 못했다.

계속되는 공격이 실패를 거듭하자 연대장은 23일 오후, 새로운 계획을 준비했다. 638고지 전방에서 기존의 3개 중대가 공격을 계속하고 새로 투입된 4중대를 서측방에, 9중대를 동남쪽에 투입해 5개 중대로 638고지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었다.

연대장의 계획에 따라 4월24일 2시간 동안 고지 정상에 1300여 발에 달하는 공격 준비 사격을 퍼부었으며, 그 시기를 이용해 전개를 마친 각 중대가 화력연신과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그때 638고지 서측방에서 공격하는 4중대는 이무표 중위가 지휘하는 3소대를 선두로 정상을 향해 공격했다. 소대가 8부 능선에 도달했을 때 적의 사격으로 한 명이 전사했으나 공격을 계속한 3소대는 새벽 6시44분쯤 교전 없이 정상에 진입했다. 이어서 나머지 4개 중대도 정상을 밟았다.

연대는 즉각 진지 강화에 착수하는 한편 19번 도로 개통을 위한 작전을 계속했다. 그 결과 4월26일 오후부터 19번 도로가 정상화되면서 16일 동안 전개됐던 안케전투가 종료됐다. 그동안 수도사단 병력 74명이 전사하고, 104명이 부상당했다.

사살된 적은 705명에 달했으나 대부분 지원화력에 의한 포살(砲殺)이었으며, 기동부대와 교전에서 사살된 적은 극소수였다. 전투가 끝난 후 사단장은 약속에 따라 638고지에 가장 먼저 진입한 이무표 중위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부여했다.

안케전투의 결과 장병 두 명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지만 보다 큰 차원에서 볼 때 문제점이 많았던 전투였다. 아군은 평화 협상이 진행되면서 작전활동에 소홀, 1개 연대의 적이 아군 코 앞에 침투해 강력한 진지를 구축한 사실을 1개월이나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638고지 일대에 투입된 1개 연대 규모의 북베트남군은 외부의 지원 없이 독립 작전을 수행하는 고립 부대였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638고지 점령에 급급해 적의 규모도 알지 못한 채 병력을 축차 투입하며 단순한 정면 공격을 반복한 결과 많은 피해를 자초한 사실 등은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일보-200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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