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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3·1 독립운동 그 역사의 현장을 가 보신 적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탑골 공원이다.
한때 파고다 공원이라고도 불리던 이곳은 1919년 3월1일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장소다.
3·1운동의 메카답게 현재 이곳에는 3·1 독립선언서 기념비, 3·1정신 찬양비, 3·1운동 기념 벽화(10개),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동상,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동해용운당대선사비(1967년 건립)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비(보물 제3호)가 남아 있고 2001년에 발굴한 조선 시대 우물터,
조선 시대 과학 유물인 앙부일구 대석 등이 보존돼 있어 이곳이 유서 깊은 곳임을 말해 주고 있다.
탑골 공원은 본래 고려 시대에 흥복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세조의 명으로 1464년부터 원각사를 짓기 시작, 1467년에 10층
석탑을 완공하면서 낙성식을 했다.
탑골 공원이 자리한 종로 일대는 조선 시대에 ‘운종가’라고 불렸다. 이곳은 파루(통행금지 해제)와 인경을 쳐서 도성의 8대문을
여닫게 하던 종루를 비롯해 상점들이 즐비하던 한성의 상업 중심지였다. 종로 2가 도로 모퉁이에는 승동교회(유형문화재 제130호)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를 따라 인사동 쪽으로 가다 보면 승동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흰색 건물이 나타난다. 교회 마당에는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기록한
비석이 있어 이곳이 독립운동의 역사 현장임을 알려 주고 있다.
승동교회에서 다시 조계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면 왼편에 12층짜리 흰색 건물로 된 태화 빌딩이 있다.
이곳이 3월1일에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음식점 ‘태화관’ 자리다.
본래 3·1운동은 탑골 공원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당일에 민족 대표들이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학생·시민들이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의 거사를 치르게 됐다.
현재 태화 빌딩 현관 앞에는 ‘삼일운동 선언 유적지’라고 쓰인 큰 비석이 놓여 있다. 그리고 건물 1층 로비에 3·1 독립선언서와
당시 상황을 그린 유화가 한 점 걸려 있다.
조계사 쪽으로 조금 더 가 보면 후문 맞은편에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숙명대학교 옛터’라는 입석과 함께 ‘보성사터’라고
쓰인 안내문이 있다. 보성사? 누구나 궁금해할 이 생소한 이름은 바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찍어 낸 인쇄소다.
1919년 2월27일 밤, 보성사에서 찍어 낸 3만5000장의 기미독립선언문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보내졌다. 보성사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월1일에는 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 1만 부를 발행해 3·1운동의 불길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현재 이곳에는 보성사를 기념하는
‘3인의 군상과 민족정기’라는 높이 6m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올해로 광복 60주년, 그리고 3·1운동 86주년을 맞는다. 현재 세계는 국제화·세계화의 물결 속에 하나로 묶이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그만큼 한 나라의 국력이 이제는 역사까지 선점하는 양상으로 번져 가고 있는 것이다.
3·1운동과 관련한 지역을 찾아 나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미 현대화의 물결 속에 관련 장소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많은 부분이 이제는 ‘기억’과 ‘역사’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광복 60주년을 맞아 종로와 인사동 일대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은 생활 속에서 새로운 ‘역사적
감동’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정해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