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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19: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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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북한군의 8월공세와 다부동 전투 (국방일보)



제목 : 북한군의 8월공세와 다부동 전투

저자 : 전장새부 선임연구원 손규석

수록 : 국방일보, 2002.08.20


c 1950년 8월초 북한군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5개 사단을 투입하여 대공세를 전개하였다. ‘8월공세’로 불리는 이 공세의 주요 목표는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여 당시 한국의 임시수도인 대구와 부산을 점령하는데 있었고, 이를 위해 제2군단 예하의 제1, 13, 15사단을 대구 축선에 집중하였다. 반면에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 등 3개 사단이 대구 북방에서 방어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c8월 11일 왜관-다부동-군위-포항 선으로 이동하여 적을 저지하라는 육본의 방어선 축소조정명령이 하달되자, 국군 제1사단은 강변전투를 종결짓고 12일 야간에 철수를 개시하였다. 다음날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해 제15연대는 328고지 일대, 제12연대는 수암산과 유학산 일대, 그리고 제11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날 적도 제3사단 일부가 약목 일대를 도하하여 328고지를 공격하고, 제15사단은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였으며, 제13사단은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처 제11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써 국군 제1사단은 방어선의 돌파와 다부동이 점령당할 위기를 맞게 되었다.

c대구 정면의 적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다. 국군 제1사단의 전황은 제15연대가 328고지를 놓고 쟁탈전을 전개 중이었고, 제12연대는 유학산 탈환을 위해 공격을 반복하였으며, 제11연대는 전차 7대를 앞세운 적 연대규모의 공격으로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적의 공세가 한창이던 8월 16일 유엔군사령관은 대구 전선의 위기 극복을 위해 왜관 서북쪽 낙동강변 일대에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적의 공세를 약화시키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16일에는 가산으로 침투하려던 적이 741고지에서 다부동 서측의 466고지를 공격, 국군 제1사단이 ‘돌파되느냐 고수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자, 방어선 유지를 위해 미 제8군은 다음날 미 제27연대를 다부동에 투입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8일 새벽 금오강변에 침투한 적 게릴라가 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떨어지자 대구는 혼란상태에 빠져들고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c국군 제1사단은 미 제27연대와 보전협동으로 적진돌파작전을 전개하여 이 위기를 타개하고 계획된 방어선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차를 새로 보충 받은 적이 전면적인 야간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제15연대는 328고지에서 수 차례의 수류탄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제12연대도 쌍방간에 많은 손실을 낸 채 19일 수암산을 피탈당하고 유학산 일대에서 공방전을 반복하였으나 대체로 적의 돌파확대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황이 위급해지자 미 제8군과 육군본부는 각각 1개 연대씩을 다부동 지역에 추가 투입하였다.

c8월 20일 밤 적측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더 이상 다부동 전선을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했음인지 적은 유학산 일대에 전개한 제15사단을 의성 방면으로 이동시킨 후 국군 제8사단 정면인 영천 방면으로 공격하도록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제3사단 일부가 수암산 일대에, 제13사단이 유학산 우측면을 담당하게 되어 공격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다부동 피탈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던 국군 제1사단에게는 천만다행한 결과였다.

c그러나 8월 21일 저녁 적은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제11연대와 미 제27연대에 대해 최후발악적인 대규모 야간 역습을 가해왔다. 치열한 전차전이 5시간이나 계속되었고, 날이 밝은 후 다부동 계곡에서는 파괴된 적 전차와 자주포 그리고 1,300여 구의 적의 시체가 확인되었다. 또한 오전에는 적 제13사단 포병연대장이 제11연대 지역으로 귀순하여 은폐된 포 진지를 밝히고, 유엔 전폭기 편대가 이를 폭격함으로써 적 제13사단의 화력지원은 무력화되었다. 제12연대도 8차례의 공격 끝에 이날 밤 최초로 야간 기습을 시도하여 유학산 탈환에 성공하였다.

c마침내 제1사단은 주저항선을 안정시켜 작전의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과 다부동 일대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 3개 사단과 25일 동안의 교전을 전개하여 8월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후, 미 제1기병사단에게 진지를 인계하고 신녕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결과적으로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으로 하여금 낙동강 전선의 돌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고,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에게는 공세 이전의 계기를 포착하여 다른 유엔군 부대들과 함께 반격작전으로 이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값진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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