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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19: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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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 (국방일보)



제목 :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

저자 : 군사편찬연구소장 하재평

수록 : 국방일보, 2002.06.25


c지난 5월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시각차 해소를 논의하기 위하여 중국군사과학원과 단둥(丹東)의 ''항미원조전쟁기념관(抗美援朝戰爭紀念館: 한국전 참전 기념관)''을 방문 한 바 있다. 군사과학원은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접 통제를 받는 중국군의 싱크탱크로 대장(上將)이 지휘하며 600여명의 연구원이 군사문제 전반을 분석하는 중국 최고의 군사연구기관이다.
특히 군사과학원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간사(公刊史), {항미원조전쟁사}를 2회에 걸쳐 편찬하였고 우리가 편찬한 {한국전쟁사 11권}을 모두 번역하여 정책에 참고 자료로 제시하는 등 활발한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c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38도선을 넘어 중국국경선까지 진격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자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참전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구 소련 극비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주장이 허구였으며, 마오쩌둥(毛澤東)은 전쟁발발 전부터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깊숙이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러시아가 구 소련의 극비문서를 전격적으로 공개한 반면 중국은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한 310건의 문서만을 제한적으로 공개함으로써 한국전에 대한 역사적 실체 파악을 더디게 하고 있다.

c이처럼 중국이 한국전쟁에 관한 문서의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첫째, 북한을 의식해서이며, 둘째는 중국의 책임 문제와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한국전 참전에 대한 비판여론 때문이다.

c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한국전 참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인명과 재산의 손실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발전의 지체를 가져왔으며 대만해방의 기회를 상실했고 일본의 부흥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평가도 중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제기되었을 뿐 전쟁발발의 책임에 대한 문제까지는 발전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유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면적인 관련 자료 공개가 요구되며 이에 근거해 역사적 사실을 완벽하게 복원하여 상호 인식의 차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중국 군사과학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측 관계자는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차를 해소하는 것이 향후 양국 간의 새로운 갈등을 방지하는 방책이라는 필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하였다.
c그리고 이제까지 고집스럽게 사용하던 ''항미원조전쟁''이라는 명칭을 ''한국전쟁''이라고 표현하였고, 이제 한국전쟁을 편협된 시각으로 바라보던 때는 지났다고 강조함으로써 한국전쟁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편향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였다.
c그러면서도 중국의 참전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과거 완고하던 중국의 태도가 한층 유연해진 것은 3회에 걸친 국방장관급 회담으로 양국 군사관계가 한층 발전된 결과라 하겠다.

c중국은 한국전 당시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愿軍)'' 부사령관을 지낸 홍쉐즈(洪學智)의 요청에 따라 중국 군이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주둔하였던 단둥시에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을 1993년에 건립하였다. 중국당국은 이 기념관을 활용하여 참전의 불가피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기념관은 중공군이 미 제2사단을 대파한 청천강전투와 저격능선 전투로 일컫는 상감령(上甘嶺) 작전을 열악한 무기로 세계 최강의 미군을 무찌른 중공군의 용맹성에 초점을 맞추어 부각시킴으로써 중국인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c또한 1950년 11월 8일 미 공군 B-29 전폭기에 의해 파괴된 압록강 철교도 복원을 하지 않고 관광단지로 조성하여 미군의 침략상을 고발하는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필자는 중국이 압록강 단교 위에 써놓은 당시 전황 안내문을 보며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저 교량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 미국이 중국을 위협하였다면 중공군이 압록강을 도강한 10월 25일 이전에 폭파하지 않았겠느냐!" 반문하여 그들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싶었다.
c그러나 한국전쟁에 관한 문제가 감정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설움과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 국방력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발길을 돌렸다.
c역사란 자국의 이익을 반영하기 때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역사인식 차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불가능할 지 모른다.
c그러나 이제 중국에서도 연인원 300만 명이 동원되고 97여만 명이 손실된 한국전 참전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과거 자신들의 무모함이 얼마나 많은 한국민 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일깨워 줄 시점에 와 있다.

c이러한 면에서 한국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군사(軍史) 연구교류의 시작은 새로운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라 하겠다. 백전기법의 모전(謀戰)에서 가장 훌륭한 전법은 적의 계략을 공격하여 분쇄하는 것이라는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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