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아프간 항구적 자유작전과 동의·다산부대
[사랑의 인술 펼치며 新실크로드 닦다 / 2011.07.05]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고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과도정부 수립 후 ‘항구적 자유작전(OEF)’의 제4단계로 안정화작전이 시작됐다. 해성 및 청마부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2002년 2월 의료지원단인 동의(東醫)부대가 키르기스스탄에 파견됐다. 그리고 1년 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부대를 재배치해 2007년 철수할 때까지 베트남전쟁 이후 세 번째로 긴 기간인 5년 10개월 동안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동의부대 뒤를 이어 공병부대인 다산(茶山)부대가 파견됨으로써 2003년은 육ㆍ해ㆍ공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연합 및 합동작전을 수행한 새로운 전기(轉機)가 된 해였다. 동의ㆍ다산부대는 해발 1500미터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적대 세력에 의한 숱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바그람 공군기지 내 17개국에서 온 1만2000여 명의 군인 및 구호 요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은 “신이 내린 축복, 황무지에서 기적을 일궈내는 공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동의부대와 신이 내린 축복
동의부대(제924의료지원부대)는 조선 중기 명의(名醫)인 허준(1539∼1615)의 의학서적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따온 명칭이다. 최초 90명으로 편성해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항에 전개, 미 중부사 예하 제376공군원정군 사령부 협조하에 동맹군과 현지 주민에 대한 의료 및 대민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제2진은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바그람에 각각 파견대를 운용했다.
마나스에서 1년 간 임무를 수행한 후 제3진은 다산부대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로 전개해 기지 내에서 동맹군과 현지인을, 카불 군사학교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육군 훈련병에 대한 진료를 했다. 그리고 마나스(20/20명)와 카불(3/5명)에 파견대를 운용해 의료 지원을 계속했다. 동의부대는 새벽부터 찾아오는 아프가니스탄 환자들에게 친절과 배려의 마음을 바탕으로, 진료뿐만 아니라 현지주민 계몽을 위한 월 1∼2회의 보건교육과 구호품을 정기적으로 제공했다. 우수한 의료진과 헌신적인 임무수행, 타국군에는 없는 한방진료 등은 많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진료하는 동안 한국의 가난했던 과거와 역동적인 오늘의 모습을 동영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절망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게 재건의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와 더불어 한미 연합 대민 진료로서 격오지 마을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펼쳤으며, 다국적 의료단과 의무학술 세미나ㆍ연합의무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네덜란드·독일군 병원 등을 방문해 선진 야전병원 시스템을 견학하면서 상호 친선을 도모했다. 2007년 12월 철수 시까지 총 11개 진 791명은 25만9569명의 환자들에게 사랑의 인술(仁術)을 베풀어 커다란 감동을 남겼다.
●다산부대와 세계평화의 길
다산부대(제100건설공병단)는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거중기(擧重機) 발명과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약용(1762∼1836)의 호에서 따온 명칭이다. 최초 150여 명으로 편성해 2003년 2월 동의부대 제3진과 함께 파견됐는데, 임무 소요 증가로 2004년 제3진부터 건설공병단 규모로 증편했다. 그리고 동의부대와 함께 한국군 지원단으로 통합했다.
다산부대는 동맹군의 바그람 기지 내 비행장 활주로 확장ㆍ항공기 계류장 공사, 각종 시설 공사 등 기지 운용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을 위한 건설 및 토목공사, 유치원 보수 대민지원 등도 병행해 현지 주민들과 우호를 증진했다. 2007년 12월 동의부대와 함께 철수 시까지 총 9개 진 1349명은 바그람 기지 내 공사의 50%에 해당하는 401건을 실시해 기지 운용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다산부대가 주둔했던 바그람 기지는 오늘날 아시안 하이웨이(AH:Asian Highway)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신(新)실크로드’로 불리는 이 길은 아시아 32개국을 14만여㎞로 그물망처럼 엮고 있다. 그중에서 AH1은 동경ㆍ서울ㆍ북경ㆍ뉴델리ㆍ카불을 거쳐 이스탄불에 이르는 상징적인 도로다. 길은 사람과 자원, 정보가 흐르는 생명선이다. 그 길을 다산부대가 평화의 도로로 닦았고 오쉬노부대가 그 뒤를 이어 꿈과 희망의 도로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2007년 2월 27일, 적대세력에 의한 바그람 기지 정문 자살폭탄 공격으로 고(故) 윤장호 하사가 전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은 차후 파견 장병의 안전 대책을 더욱 강구하게 함으로써 현재 인명손실 없이 14개국 17개 지역에서 1400여 명의 장병들이 국제평화유지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데 일조했다.
●해병대·주 아프간 대사관 경계작전
해병 경비대는 최초 동의부대가 키르기스스탄에 파견 시 경비반 8명으로 편성해 함께 파견했다. 2003년 다산부대가 파견 시 17명을 추가해 바그람 기지 내 동의부대와 다산부대의 경계 작전ㆍ진료경계지원을 수행했다. 이와 아울러 태권도 교실을 운영해 동맹군에 대한 교육과 각종 행사 시 태권도 시범을 실시했다.
아프가니스탄 치안 정세의 불안으로 2003년 11월부터는 주(駐)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경계 작전을 1개 분대 규모로 실시했다. 한국 대사관 경계작전은 재외 공관 및 교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군의 의무와 역할을 다하는 상징적인 임무 수행이었다. 해병대 파견은 베트남전 이후 두 번째의 파견이었고, 2004년 8월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견 시 중대급으로 증강해 국제평화유지군으로서 세계 속의 해병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부대 철수 후 인도적 지원
2007년 12월 동의ㆍ다산부대 철수 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재건지원 작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키로 했다. 이에 따라 2008년 6월 동의부대가 운영하던 병원시설을 인수해 민간의료 및 직업훈련 팀(KMVTT:Korean Medical and Vacational Team) 20명을 파견했고, 2010년에 바그람 기지 내에 병원 및 직업훈련원 준공과 임시 PRT(지방재건팀)를 개소했다. 여기에 한국군은 2003년 8월부터 임무를 수행해 오던 민사반 부팀장과 군의관 등 5명을 파견해 각종 지원을 실시했고, 이는 2010년 7월 오쉬노부대 PRT 활동으로 연계됐다.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전장 환경을 극복하고 재건 지원과 인도적 지원 임무를 계속해 왔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의 선조들이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과 문화를 교류하던 곳으로 결코 우리에게 먼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배타적인 아프가니스탄 민족성도 오랜 외침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 난 것이다. 이와 유사한 환경이었던 베트남에서도 한국군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듯이 중앙아시아의 화약고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적대세력의 군사적 위협을 극복하면서 오쉬노부대는 동의ㆍ다산부대의 뒤를 이어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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