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베트남은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쳐 있다, 역사적으로 비엣족 중심의 민족은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대사에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남ㆍ북 베트남 간 3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통일을 이룬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외세저항

아시아 대륙 동쪽의 한반도와 남쪽의 베트남은 유사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쳤다. 두 나라 모두가 중국대륙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북부지역은 아열대성 기후와 풍부한 농산물과 해산물, 상아와 비취 등 진귀한 자원이 풍족했기 때문에 중국의 침략이 더욱 잦았다. 또한 프랑스 등 유렵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은 중국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었다.
따라서 베트남은 1,000여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와 100여년에 걸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단기간이었지만 일본의 지배도 받았다. 그 결과 베트남 사람들은 외세의 지배에 대항하면서 그들을 격퇴하거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저항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중국의 지배와 저항 시대(B.C. 179∼A.D. 938)

고대(古代) 베트남의 최초국가는 B.C. 690년, 베트남 북부 홍(Hong)강 삼각주 일대에 수립된 ‘반랑(Van Lang)’이었다. 반랑은 오늘날의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넓은 평야지대에서 논을 이용한 경작에 종사했으며, 이모작(二毛作)까지 했다고 한다. 한편 광둥(廣東)을 중심으로 남중국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한족(漢族)의 남비엣(Nam Viet, 南越 : B.C. 207∼111)이 남하하면서 B.C. 179년 베트남 북부지역을 병합했다. 그때부터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후 중국의 왕조는 계속 바뀌었지만, 베트남 북부지역에 대한 중국의 지배는 1,000여 년 동안 계속됐다.

그때부터 베트남의 새로운 문자는 성경을 번역하는 등 선교 목적으로 일부에서 사용되었으나,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 후 베트남을 식민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가 1906년, 새로운 문자를 '꾸옥응우(Quoc Ngu : 國語)'라고 부르면서 중등학교 교육에 강제로 채택함으로써,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통왕조 시대(939∼1862)

중국의 지배를 물리치고 수립된 응오(Ngo) 왕조(939∼965)가 멸망한 후 베트남북부지역에는 몇 차례의 왕조교체를 거쳐, 1225년에 쩐(Tran : 陳) 왕조가 수립되었다.

그때 중국에는 몽골이 남하해 원(元 : 1271∼1368)을 건국하고,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부상했으며, 그 과정에서 3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침입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몽골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전 국민이 참가하는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그 결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군도 베트남만큼은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 후 몽골을 대신해 중국을 통일한 명(明 : 1368∼1644)의 영락제(永樂帝)가 1407년 베트남을 점령해 20년 동안 지배했다. 명의 베트남 지배는 또 다시 토착세력의 저항을 불러왔는데, 끈질긴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레러이(Le Loi)가 1428년, 명의 군대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했다. 그 후 레 왕조는 강력한 남진정책을 계속 추구해 1471년, 지금의 뀌년(Quy Nhon) 남쪽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이어진 남북조시대를 이용해 중부지역의 참파와 남부지역의 캄보디아를 위협하면서 남진정책을 계속 추구해 1757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베트남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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