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쳐 있다, 역사적으로 비엣족 중심의 민족은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대사에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남ㆍ북 베트남 간 3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통일을 이룬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5년 이후 30년 동안 베트남은 10년 을 주기로 하는 3단계의 변화를 겪었다.
그 첫 번째 10년 동안 베트남은 미군을 축출했던 여세를 몰아 1978년 10월,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이어서 중국과 전쟁에 승리하며 민족적 자존심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베트남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고립을 자초한 베트남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리고 10년 후 1986년 12월, 베트남 집권층은 그들의 과오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도이머이(刷新)정책’ 을 채택하며 사회주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1992년 12월에는 한국에 이어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베트남은 형식상 ‘사회주의’ 를 표방하면서도 중국을 능가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로 전환했다. 오늘날에는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의 어느 곳에서도 사회주의 색채를 찾아보기 어렵다.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修交) 에 합의한 후 양국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활발한 접촉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1993년 5월 보반끼엣 총리, 1995년 4월 도무어이 당서기장, 2001년 8월 쩐득르엉 국가주석 등 베트남 측 인사들의 방한(訪韓)이 이어졌다. 한국 측에서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등 양국은 주요 인사들의 상호 방문을 통해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2009년 10월, 베트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두 나라의 협력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제 양국의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는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 두 나라의 교류는 경제분야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 측면의 교류도 활발하다. 베트남의 학생장교가 한국의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전략전술을 연구하고, 한국의 방위산업체가 베트남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민간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들이 상호방문하고 있으며, 5만여 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8만 8천여 명의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에, 8만 5천여 명의 한국인은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다. 앞으로 두 나라의 교류와 협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들의 귀중한 자원과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결합해 새로운 시너지효과와 함께 새로운 협력관계를 만들어내면서 동아시아를 주도할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를 더 알고 싶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