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청룡·맹호·백마부대는 전선없는 전장에서 북베트남군 및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공)과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책임지역내에서 독자적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면서, 미군 및 남베트남군 등과 긴밀한 연합작전협조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장에서는 제100군수 사령부가 700여 Km의 광범위한 작전 종심이었지만 지속적인 전투근무지원을 원할하게 수행했다.

군수지원 체계

한국군에 대한 군수지원 체계는 파견 기간 중 전장 상황에 따라 4차례의 변경과정을 거쳤다. 최초에는 주월미군의 지원물자와 국내조변물자로 구분하여 남베트남군으로부터 지원이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1966년 9월부터는 제100군수사령부의 창설과 9월 6일 체결된 ‘한미 군사실무약정서’의 “주월 미군사령부는 미군부대에 적용되는 동일한 군수기준에 따라 파월 한국군을 지원한다”는 항목에 의해 일부 식량 및 구형장비를 제외하고 전 물자 및 장비를 주월미군의 야전창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세 번째는 주월미군의 점진적인 철수에 따라 1971년부터는 콩빈(Cong Binh)의 미 제5야전창으로 통합되었다. 네 번째는 1972년 5월부터 남베트남군으로부터 식량과 3종(탄약)·4종(장벽자재)·5종(탄약)을, 2·4·7·8·9종은 오키나와의 미 제2군수사령부로부터 직접지원보급제도(DSS)에 의해 지원되었다.

신형 전투장비 보급 및 정비

신형 전투장비의 보급 및 정비는 최초 파견 당시 편제 기준 85%의 보유장비에 비하여 125%이상의 높은 비율로 증강되었고, 노후된 장비를 신형 장비로 교체 및 보충하였다. 따라서 1967년도 말까지 신형 4.2″, 81mm 박격포, M-113 장갑차, 무전기 등이 대부분 교체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개인화기 M-16 소총은 총 29,104정이 보급되어 전투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사단 항공중대에 UH-1D 헬기, U-6/A 경항공기 등을 갖추게 되었고, 공병, 의무, 통신, 수송 등 분야에 각종 신형장비가 보충되었다. 전쟁수행과정에서 한국군에 적합한 전투식량(K-ration), 전투복 및 전투화의 개발 및 조달은 군수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정비는 4계단 야전정비는 대부분 미 지구군수지원단(RSA)예하의 군수지원대(LSA)에서 지원되었고 일부 구형 장비 및 차량은 지역 남베트남군 정비창에서 지원되었다. 그리고 해군의 함정 정비와 탄약보급은 남베트남 해군 또는 미해군의 보급창과 수리를 의뢰하였고 탄약창을 통해 보급을 받았다.

환자 후송 및 지료

환자후송 및 치료는 대부분 한국군 후송병원과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실시되었는데 말라리아 환자의 경우 미 제6정양병원에서 수용하였다. 이를 위해 군의관 2명을 포함한 8명이 연락반으로 파견되었다. 필요시에는 수도사단 지역은 뀌년의 미 제85후송병원, 제9사단은 냐짱의 미 제8야전병원과 협조하여 후송하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후송되는 환자의 원활한 지원을 위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 의정장교 1명이 파견되었다. 또한 긴급 환자에 필요한 혈액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되었는데 제6후송병원은 미 제528 이동의무시험소에서, 해병여단의 제1치료중대는 미 제406이동의무시험소에서 각각 지원 받았다.

수 송

육로수송은 자체 수송수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한국군의 수송능력을 초과시에는 미군의 가용 수송수단이 지원되었다. 해상수송은 한·미·월 군사령부 대표장교로 구성된 해상 수송협조기구(SLCC)를 통하여 통제되었다. 연안수송은 해군수송전대가의 LST 3척, LSM 2척과 미군의 LST 22척, 남베트남군 LST 3척, LSM 7척을 보유하고 있어 연합군의 가용한 수송선은 37척이었다. 한편 대양수송은 미 해군수송선 2척에 의해 정기적으로 한국군의 교체병력 및 귀국장병과 대월남 화물수송을 전담하였다. 한편, 항공수송은 한국군에 대한 남베트남 국내 및 한국으로의 인원 및 장비의 수송은 한·미간의 기본약정대로 한국군 C-54와 미 C-130이 정기 운항되었다. 그리고 한월간을 연결하는 항공수송은 한국군의 C-54와 주월미군사원조사령부에서 제공한 A-727을 활용하였다.해상수송작전은 남베트남 연안수송과 한·월 간 대양수송으로 구분되었다. 원거리 대양 수송작전은 최초 1965년 3월 한국군사원조단의 파견 시 수송함 5척과 호송함 2척이 참가하였다. 7월에는 2척이 추가 파견되어 해군수송단대를 편성하여 구호 및 보급물자 수송작전을 실시하였다. 남베트남 연안수송작전은 군수물자 수송 소요의 증가로 1966년 3월 15일 2척을 증파하여 해군수송분대로 개편하였고, 1967년 4월 해군수송전대로 개편하여 남베트남 8개 항구를 대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공중수송작전은 1966년에는 전술항공지원반이 설치되어 근접항공지원 위주로 작전을 실시하다가, 1967년 7월 공군지원단이 창설되었는데 전술공수지원대, 비행대, 수송지원대로 편성되었다. 최초에는 C-54D 1대만 한·월 간 월 평균 6∼8회 운항하였고, 남베트남 내에서는 C-46D 3대를 운용하다가 1970년에는 C-54D로 교체하였다. 항공기 정비는 미군 정비반에 의존하다가 정비반을 편성하여 자체정비능력을 보유하였다. 한편 전사상자 증가에 따라 환자의 공수를 위해 항공간호장교를 2명씩 동승하여 의무지원을 하였다.

제100군수사령부

※ 제100군수사령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 ⓛ 전사편찬위원회, 「제100군수사령부」,『파월한국군전사』제1권∼제10권, 1971 ∼1985
  • ② 주월한국군사령부,『월남전 종합연구』, 1974, pp. 1157∼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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