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알아봅시다.

북한군 병력 정보 판단표(1950.6.25일 현재) 표 : 크게보기

3) 북한군의 전력은 국군의 2배 이상이었다

6.25전쟁 직전 국군이 보유한 병력과 장비는 북한군에 비해 매우 열세했다. 이는 당시 국군의 방어준비태세면에 근본적인 취약점과 위협이 됐다. 북한군은 6.25남침전쟁 개시 직전까지 전투준비가 완료된 육군 총 10개 보병사단, 해군 3개 위수사령부, 공군1개비행사단을 주축으로한 강력한 무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남침직전 북한군의 전체병력은 19만 8,380명으로 국군의 10만 5,752명에 비해 약 두 배였다. 전방방어지역에서의 아군 방어부대 병력과 적의 38도선 전개부대 병력을 비교한 피아병력 비율은 주공방향인 철원-의정부-서울 축선은 1:4.4였고, 개성-문산-서울 축선은 1:2.2였다. 조공방향인 화천-춘천과 인제-홍천 축선은 1:4.1이었고, 양양-강릉 축선은 1:2.5로 국군은 모든 축선에서 북한군에 비해 열세하였다.


더욱이 당시 국군 38도선 경계부대의 전체 병력 중 3분의 1이 외출한 것을 고려한다면 실제병력 비율은 이보다 훨씬 격차가 심했다. 일례로 당시 국군 제7사단의 경우는 사단 전방 북한군 병력보다 7분의 1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무기 및 장비의 전력 비율은 병력의 격차보다 더욱 심했다. 북한군은 국군에 단 한대도 없었던 소련제 T-34전차를 242대나 보유하고 있었고 항공기도 211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국군은 적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나 항공기를 공격할 대공화기도 갖추지 못했다. 편제상 보유한 57mm 대전차포나 2.36인치 로켓은 성능이 약하여 정상적인 공격으로서는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포병의 경우도 북한군은 국군을 압도했다. 북한군은 122미리 신형곡사포를 비롯하여 총 552문의 곡사포를 보유한데 비해 국군은 105미리M3곡사포 91문을 보유하고 있었고, 북한군은 120미리 박격포를 포함한 총 1,728문의 박격포를 보유한데 비해 국군은 81미리 박격포와 60미리 박격포를 합하여 960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군은 북한군에 비해 곡사포는 8분의 1, 박격포는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다 북한군은 모터싸이클연대와 같은 고속기동부대까지 갖추고 있었다.



더욱이 북한군의 무기 장비는 대부분이 소련으로부터 도입된 신형장비로서 전쟁 예비량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국군이 보유한 무기 장비는 모두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은 것들로서 대부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하던 노후장비였다. 그런데다 그 마저도 수리부품 등 미국의 군원 보급이 도착되지 않아 병기장비가 15%가 작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국군은 차량도 육군 8개 보병사단이 장비편제표의 52%에 보유하지 못했다. 8개 사단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차량은 통털어 1,566대였고, 직할부대의 보유차량은 약 1,200대였다. 이 차량들마저도 가동율이 40%를 넘지 못했다. 육군 각 사단의 편제차량은 377대였지만 실제로 보유한 차량은 52%에 해당하는 196대에 불과했다. 그 같은 장비로는 전쟁이 발발하면 전방, 후방부대를 막론하고 전투수행은커녕 병력과 탄약마저 제대로 수송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항공기 부문에서도 국군은 고작 연략용과 훈련용 연습기 22대 외에 전투기는 단 한대도 보유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북한은 항공기 총 211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중 전투기는 170대나 됐다.


따라서 북한군은 같은 사단이라 할지라도 전투력면에서 국군사단과 큰 차이가 있었으며, 1950년 6월 25일 시점 국군에 비해 병력이나 장비 모든 면에서 현격하게 비교되는 공격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북한군의 육ㆍ해ㆍ공군 모두 현 상태에서 그대로 전쟁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